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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비즈 칼럼

신흥국 교역, 달러 대신 현지 통화 결제 늘려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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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이종윤
한·일경제협회 부회장

얼마 전 미국 중앙은행이 양적완화 정책을 축소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가기 무섭게 인도·인도네시아 등 이른바 신흥국가들의 주가와 통화가치가 급락했다. 미국·유럽연합(EU)·일본 등 선진국들이 경기 회복을 목적으로 통화량을 무제한으로 증발하여 수요를 창출하는 정책을 추진해 왔다. 달러를 비롯한 국제 유동성이 크게 증가하면 사실상 제로금리 상태가 된다. 자연스레 경제성장률이 높은 신흥국으로 흘러 들어가 투기적 자본으로 역할을 하게 된다. 이 자본은 신흥국의 주가와 통화가치를 높이게 되는데, 그 결과 이들 국가는 내수가 활성화되지만 경상수지가 적자구조로 전환되거나 적자가 확대되는 효과가 발생한다.

 그런데 양적완화 같은 비합리적인 정책은 언젠가는 중지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양적완화 축소는 미국 금리를 상승시키는 효과를 내기 때문에 차입금의 상환을 위해 신흥국에 흘러 들어갔던 국제 유동성을 거둬들이게 된다. 따라서 유동성이 빠져나간 이들 신흥국의 경제는 주가하락과 통화가치 하락을 맞이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이들 신흥국은 심한 경우 1997년 한국경제가 경험했던 국가부도 사태로까지 내몰리게 된다. 그런 단계로까지는 안 가더라도 경상수지 적자로 인해 수입을 극도로 억제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 한국경제는 오랫동안 경상수지 흑자상태를 유지해 왔고 적지 않은 외화를 확보하고 있으며 외화 차입금 중 금방 갚아야 하는 단기성 차입금 비율이 낮다. 다시 외환위기로 몰릴 가능성은 극히 적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 제품의 주요 수입국들이 외화 고갈로 극도로 위축되면 한국의 수출이 크게 축소되는 사태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이다. 가계부채로 인해 한국 내 소비 수요가 증가하지 않는 상태에서 수출 수요마저 기대하기 어려워지면 기업들의 투자 또한 위축되어 경기 침체가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연결고리를 끊기 위해 신흥국과의 거래에서 결제수단을 달러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신흥국의 통화도 활용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달러의 급격한 대량 유출로 인하여 해당 국가의 통화가치가 실질적인 구매력 이하로 저평가되어 있는 상태에서 우리 수출품에 대한 대가로 현지 통화를 받으면 사실상 달러 가격 이상의 가치를 획득하는 것이 된다. 한국도 외환위기 당시 달러당 1800원 이상까지 갔지만 그 후 급속히 가치가 상승한 경험이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해당국의 통화가치가 지금 최악의 상태에서 점차 안정되어 갈 것임은 분명하다.

 우리가 주요 통상국과 그들의 통화를 결제수단으로 활용해 거래를 해 나가면 양적완화 축소에도 큰 충격을 받지 않을 것이다. 나아가 이들 국가와 더 긴밀한 관계로 발전해 가는 계기가 될 것이다. 아시아를 중심으로 외화 부족에 시달리는 국가들과 새로운 결제방식을 도입해 통상 축소 극복은 물론 한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경제공동체로까지 발전시키는 것을 기대해 본다.

이종윤 한·일경제협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