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물가지수를 불신하는 이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물가지수의 개편을 에워싸고 여러 가지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일부 국민 가운데에는 심지어 물가상승률을 통계상 둔화시키기 위해서 일부러 예정을 앞당겨 개편했다는 의견까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당국의 통계 개편이 이처럼 국민의 노골적인 불신의 대상이 된 것은 일찌기 그 유례가 없다는 점에서 확실히 불행한 일이라 할 것이다. 정상적으로 보아 우리나라와 같이 경제의 양적 성장속도가 빠른 경제에서는 구조변동 율이 커서 물가지수를 5년마다 개편하는 것이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이 개편된 물가지수를 불신하려 하는 데에는 충분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당국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선 통계의 중요성이 인식되면서 당국이 너무나 통계치를 의식해온 역사적 소산으로서 오늘날 통계에 대한 불신감이 일반화되었음을 직시해야 할 줄 안다.
원래 통계는 정책의 수립과 평가를 위한 소재를 마련키 위해 작성된다 할 수 있으므로 소재 자체에 뜻이 있는 것은 아니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당국자들 간에는 업적 「피아르」에 유익한 통계만을 찾아내어 자신들의 공적을 과시하는 자료로 삼는 대신, 반대로 불리한 자료는 묵살하거나, 아니면 인위적인 조작을 통해서라도 실책을 호도하려 한 타성이 쌓이고 쌓여, 오늘날 보는 바와 같은 통계에 대한 불신풍조가 일반화한 것이다.
물가지수 산출에 있어 시장가격을 기준으로 하기보다도 고시가격을 시준으로 하는 것이 통례로 되었다든지, 또는 GNP 성장률을 높이기 위해 농업생산량을 실지보다 늘렸다가 식량부족으로 외미도입을 증가시켜야 할 입장이 되니까, 다시 수확고를 줄이는 따위의 조작이 거듭된다면 누구도 그러한 통계의 가치를 인정하려고 할 리는 없을 것이다.
둘째, 통계의 작성과 발표를 통계전문기관이 자유로 할 수 없도록 만든 현행 통계제도와 그 운영이 기본적으로는 통계의 객관성을 왜곡하는 근본 원인이라 할 수 있다. 통계적인 결과에 대해서 기획원 장관과 협의해야 하기 때문에 거꾸로 통계가 정치화하는 비리를 차제에 근본적으로 시정해야 할 것이다. 통계나 조사연구의 자유화가 보장되지 않는한, 역사적 기록의 왜곡은 불가피한 것이다. 이러한 조작 타성이 지속하는 한, 자료의 부실화로 마침내는 당국자 자신들조차 무엇이 진실한 동향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입장에 빠질 것이며, 결과적으로는 정책운영 자체가 미궁에 빠지는 모순이 제기되는 점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세째, 개편물가지수가 커다란 불신을 사는 이유는 지난날 지나친 조작을 거듭해 온 당연한 귀결이라 하겠지만, 그에 못지 않게 이번 개편의 초점이 된 가중치에 큰 의문이 있기 때문이라 할 것이다.
경제규모의 확대에 따라서 농산물· 광산물의 가중치가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수산식품과 가공식품의 합계 가중치, 즉 식품가중치는 조금도 변함이 없다는 것은 이론적으로 모순이다.
또 신탄진 담배의 가중치가 무연탄·「벙커」C유의 합계 가중치와 맞먹는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더욱이 전매익금이 70년의 경우, 3백억 원 정도인데 그 가중치가 25.6인 것도 이해할 수 없다. 또, 신탄진의 가중치가 65년의 0.5에서 70년에 25.6으로 50배나 커졌다면, 그 동안 국민생활이 얼마나 악화되었는가를 반증하는 것이 아닌지 우리는 당국에 묻고 싶다.
이번 물가지수 개편을 계기로 통계행정의 차원을 근본적으로 개혁할 필요성을 당국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