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北전투기, 美정찰기 15m까지 접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지난 2일 북한 전투기가 공해상에서 정찰비행 중이던 미군 RC-135 정찰기를 위협한 사건이 발생함에 따라 가뜩이나 경색된 북.미 관계의 파고가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미국은 이 사건을 '의도적인 도발'이라고 규정한 뒤 강경 대응 방침을 밝히고 있어 향후 파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 北미그기, 美정찰기 접근 상황 >

◇상황 재구성=한.미 정보당국과 외신 보도를 종합해 당시 상황을 재구성하면 RC-135 정찰기가 원산 앞바다 2백40km 공해상에서 정찰 활동을 하고 있던 2일 오전 10시48분 북한 모공군기지에서 발진한 미그-23.29 전투기가 나타났다.

각각 두대씩으로 추정되는 북한군 최신예 전투기들은 RC-135 정찰기를 그림자처럼 따라 붙기 시작했고 한때는 15m까지 접근하기도 했다. 충돌 직전의 상황을 연출한 것이다.

북한 전투기들은 추적비행을 하면서 특별히 적대적인 행동을 보이지 않았으나, 한대의 전투기 조종사가 이 지역을 떠날 것을 요구하는 손짓을 했다. 하지만 북한 전투기들은 정찰기 조종사와 교신을 시도하지는 않았다.

긴박한 상황이 22분간 이어진 끝에 기지 복귀 명령을 받은 RC-135 정찰기가 오전 11시10분쯤 정찰 활동을 중단한 채 오키나와의 가데나(嘉手納)기지로 기수를 돌리자 북한 전투기들도 북측 상공으로 되돌아갔다.

한편 워싱턴 포스트는 미 국방부 관리의 말을 인용, 북한 전투기들이 RC-135 정찰기를 북한으로 끌고 가려 했으나 정찰기가 이를 무시하고 항로를 유지했다고 보도했다.

◇정찰기 위협 의도=한.미 정보당국은 북한이 미그-23.29 전투기를 공해상에까지 발진시켜 미군 정찰기를 위협한 사건에 대해 "한층 높아진 수준의 의도적 도발"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위협상황이 벌어졌던 위치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보면 통상적인 북한 공군의 훈련 또는 실수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정보당국은 북한 전투기의 정찰기 위협 사건을 최근 잇따라 벌어진 미그-19기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침범과 지대함(地對艦) 미사일인 실크 웜 성능 개량을 위한 시험발사와 관련지어 분석 중이다.

정보 당국 일각에서는 북한이 전투기를 동원해 정찰기를 위협한 것은 '대미 무력시위'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북한은 미.일 군당국이 최근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감시하기 위해 RC-135 외에도 WC135W 정찰기와 전파방해 등의 임무를 수행하는 E6B 전자전기를 동해 인근에 배치한 것에 대해 "선제 공격 의도"라며 거듭 비난한 바 있다.

한편 북한이 긴장을 높여 북.미 직접 대화를 이끌어 내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2001년 4월 중국 전투기 한대가 미국의 EP-3 정찰기와 중국 하이난도(海南島) 앞 공해상에서 충돌한 뒤 미국은 정찰기 문제로 중국과 대화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바꿔 대화에 나섰던 일이 있다.

◇군사외교적 파장=미국의 당국자들은 이 사건과 관련, "통상적인 정찰활동에 대해 위협을 가한 북한에 공식적으로 항의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앞으로 심각한 외교적 파장이 일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미국은 당분간 해협봉쇄 등 군사적 조치를 강구하지 않겠지만 대북압박 정책은 더욱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미국에 대해 북한이 긴장을 더욱 고조시키는 군사적 행동을 취할 경우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번질 가능성도 있다.

정부 당국자는 "이번 사건은 북.미 대화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갖고 있는 위기 의식을 그대로 노출한 사례로 볼 수 있다"면서 "유사한 사례가 재발하면 군사적 대립 국면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철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