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대통령 만난 북한 지도부, 탈북 북방루트 차단 요청한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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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정부는 방북 중인 차히아긴 엘베그도르지 몽골 대통령과 북한 지도부가 주요 탈북 루트인 ‘몽골루트’ 폐쇄에 관해 논의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30일 “북한이 엘베그도르지 대통령 방북 동안 탈북자 문제와 관련해 몽골의 협력을 요청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북한은 최부일 인민보안부장의 8월 몽골 방문 이후 “두 나라 보안기관 사이의 교류와 협조를 더욱 발전시키는 문제와 상호 관심사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며 양국협력을 강조한 바 있다. 인민보안부는 우리 경찰에 해당하는 부서로 ‘남한의 탈북자를 제거하겠다’는 특별담화를 발표하는 등 탈북자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해 온 곳이다.

 몽골 정부는 국경을 넘어오는 탈북자를 받아들이고 한국행을 원할 경우 숙식을 제공하는 등 상대적으로 탈북자 문제에 관대한 정책을 펴왔다. 이 때문에 몽골(북방루트)은 고비사막을 넘어야 하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태국·미얀마 등 남방루트와 함께 탈북자의 양대 루트로 일컬어져 왔다.

북한은 2004년 몽골이 탈북자 중간기착지가 되는 걸 막기 위해 1999년 철수했던 북한대사관을 재설치하기도 했다. 2007년에는 중국이 몽골루트 중 하나인 네이멍구(內蒙古) 자치구 국경에 철조망을 설치하는 등 북·중의 탈북자 협조가 긴밀해지며 연간 100여 명에 달하던 몽골루트 이용 탈북자도 감소 추세다. 북한은 몽골의 협조를 받아 몽골루트의 완전 차단을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은 이번 엘베그도르지 몽골 대통령 방북 동안 나선경제특구 개발 등 경제문제와 관련해 몽골과의 협력 강화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몽골은 중국·러시아 등 내륙을 통하지 않고 지하자원을 수출할 수 있는 나진항 진출에 관심을 가져 왔고 북한도 경제개발을 위한 외자 유치를 강조하며 중국·러시아·몽골을 파트너로 손꼽아 왔다.

엘베그도르지 대통령은 방북 당일인 28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만나 북한과 공업 및 농업 분야에서의 협조와 문화, 체육 및 관광 분야에서의 협조에 관한 협정을 체결했다. 30일엔 박봉주 북한 내각총리와 이룡남 무역상 등을 만나 경협과 관련해 긴밀한 논의를 했다.

이날 북한 측은 몽골에 파견한 1700여 명의 북한 인력 확대, 정보기술(IT)과 농축산 분야 경협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엘베그도르지 대통령은 29일엔 판문점과 개성 공민왕릉, 평양 금수산태양궁전을 방문했고 30일엔 최태복 최고인민회의 의장 등을 만난 후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북한과 몽골 유소년 축구 경기를 관람했다. 정부 당국은 31일 출국 전 엘베그도르지 대통령이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을 면담할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두 사람이 만날 경우 김 위원장이 2011년 북한 최고지도자로 등극한 후 첫 외국 정상과의 회담이 된다. 2004년에 나차긴 바가반디 당시 몽골 대통령이 방북했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은 성사되지 못했다.

정원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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