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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514> 세기의 연설 뒤에 숨겨진 이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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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전영선 기자

“내겐 꿈이 있습니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문장입니다. 미국의 흑인 민권 운동가 마틴 루서 킹(1929~1968) 목사의 1963년 8월 워싱턴 대행진 연설 핵심 구절입니다. 대행진 50주년을 맞아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킹 목사의 명연설은 즉흥적으로 이뤄졌다고 합니다. 세계인의 뇌리에 각인된 감동적이거나 충격적인 연설, 그 뒤에 숨겨진 이야기를 살펴봤습니다.

전영선 기자

내겐 꿈이 있습니다

1963년 8월 28일 워싱턴 링컨기념관 계단에 마련된 연단에서 ‘내겐 꿈이 있습니다’ 연설을 하고 있는 마틴 루서 킹 목사(가운데). 이 연설로 킹 목사는 스타급 국가지도자로 부상했다. [중앙포토]

연설은 잘 되고 있지 않았다. 수요일 여름 오후는 길었고, 링컨기념관 앞에 모인 지친 대중에겐 수사학적 아드레날린, 진짜 시가 필요했다. 마틴 루서 킹은 일생일대의 청중과 마주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날 밤 늦게까지 워싱턴 윌러드 호텔에서 동료들과 함께 작성한 연설문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너무 많은 손들이, 들어가야 할 말과 강조해야 할 문구를 추가하고 삭제하기를 반복한 연설문이었다. 마음속으로 즉흥적으로 할 말을 가다듬고 있을 때, 어디선가 조용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행진을 함께한 가스펠 가수 마해리아 잭슨이었다. “저들에게 꿈에 대해 말해주세요, 마틴.” 킹 목사는 이 말을 받아 그를 미국의 국부 반열에 올릴 명연설을 시작했다. “친구들, 오늘 그리고 내일 우린 어려움에 직면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겐 꿈이 있습니다.”

 미국 잡지 타임이 워싱턴 대행진 50주년 특별판에 소개한 ‘내겐 꿈이 있습니다’ 연설 탄생 전말이다. 킹 목사는 이 문장을 말한 후 사전 준비한 원고는 돌아보지 않았다. 대신 그는 성경과 미국 헌법에 나타난 이상적인 국가의 모습을 눈에 보이듯 그려 나가기 시작했다. 이는 제퍼슨의 필라델피아 독립선언문 낭독(1776)과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1863)의 화법이기도 했다. 킹은 자신이 꿈꾸는 미국의 모습, “조지아주의 붉은 언덕에서 전 노예의 자식들과 전 노예 주인의 자식들이 같은 식탁에 앉아 형제애를 나누는” 사회의 모습을 눈에 보이듯 그려냈다. 대행진 이듬해인 64년 인권법이 통과됐고, 65년 흑인의 투표권 행사를 방해하던 선거법 개정도 이루어졌다. 50번의 여름이 지나간 지난 8월 킹 목사가 섰던 바로 그 연단에서 미국 첫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당시의 상황을 재현했다. ‘정치인 오바마’의 연설에선 시에 가까웠던 킹 목사의 연설 감동은 찾기 힘들었다는 평가다. 하지만 킹 목사 이후 미국 사회가 얼마나 먼 길을 걸어왔는지 보여주기엔 충분했다. 오바마의 존재 자체가 킹 목사의 꿈이 얼마큼 성장했는지 보여주는 증거였기 때문이다.

 여성도 사람인가요

수전 앤서니

 "난 지난 대통령 선거에 자격 없이 선거에 참여하는 ‘범죄’를 저질렀다는 혐의로 오늘밤 이곳 여러분 앞에 서 있습니다. 오늘밤 내 임무는 내가 행한 투표란 행위가 범죄가 아니며 미국 시민으로서 그 어떤 종류의 권력도 거부할 수 없는 헌법이 보장한 권리를 행사했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1873년 수전 앤서니(1820~1906)는 ‘감히’ 여성이 투표한 죄로 재판정에 섰다. 앤서니는 이날 연방 헌법에 명시된 ‘피플’, 즉 국민이 ‘백인 남성’이 아님을 조목조목 짚어냈다. ‘우리’(we)와 ‘사람’(people)의 반복적 사용을 통해 미국을 세운 ‘우리’가 누구인지를 증명해 나간다. 결론은 “여성은 사람인가”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여성은 사람이 아니다”고 답변하기 어려운 만큼, 여성=사람=시민 등식이 성립한다는 것이다. 여성이 시민의 권리인 투표권을 행사하는 것이, 합법적인 권리 행사임을 논리적으로 풀어냈다. 여성 투표권 제한은 헌법에 위배되고 나아가 흑인의 투표권이 있다고 설파한다. 이 연설 후 앤서니는 100달러의 벌금형에 처해졌다. 하지만 그는 벌금 납부를 거부했다. 1919년 미국은 투표권을 여성에게 확대하는 헌법 수정조항 19조를 통과시켰다. 이 조항은 ‘수전 앤서니 조항’으로도 불린다.

나는 베를린의 시민입니다

1963년 케네디 미 대통령의 서베를린 연설 장면.

 존 F 케네디(1917~1963) 대통령의 입에서 독어 문장이 나왔다. 1963년 6월 26일 냉전의 상징 베를린 장벽,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서베를린 인구의 80%를 청중으로 두고서다. 사실 케네디가 말한 독어 문장은 비문이어서 전혀 다른 뜻을 나타내는 말이었다. “Ich bin ein Berliner.” “나는 잼이 들어 있는 도넛입니다”라고 한 셈이 됐다. 하지만 베를린 시민들은, 그가 진짜 하고자 했던 말 “나는 베를린의 시민입니다(Ich bin Berliner)”로 기꺼이 이해했다. 케네디는 자신을 베를린의 시민으로 부르며, 무한한 연대감을 표했다. 그는 베를린 장벽 연설 외에도 세계인이 기억하는 여러 연설을 남겼다. 대표적인 것은 61년 취임 연설이다. 그는 연설 말미에 “그리고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조국이 내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를 묻지 말고 여러분이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물어보십시오”라고 했다.

 케네디의 베를린 장벽 연설 ‘흥행’ 성공으로 브란덴부르크 문은 세계의 지도자들이 찾는 꿈의 연설 무대가 됐다. 87년 로널드 레이건(1911~2004)은 이곳에서 미하일 고르바초프(82·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를 향해 “저 벽을 허물라(Tear down this wall)”고 말했다. 이 문장은 ‘레이건 재임 시절 가장 유명한 4개의 단어’로도 불린다. 연설 25주년을 기념해 지난해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레이건의 참모들은 이 문장을 연설에 넣을지를 두고 몇 주간 논쟁을 벌였다. 국무부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고르바초프를 자극할 수 있다”며 맹렬히 반대했다. 하지만 레이건 연설문 작가였던 피터 로빈슨이 막판에 몰래 끼워 넣다시피 해 살아남았다. 레이건의 연설에는 케네디에게서 영감을 받은 독어 문장이 곳곳에 들어가 있었지만 벽을 허물라는 강력한 말에 밀려 잊혀졌다. 고르바초프도 훗날 이곳에서 연설할 기회가 있었지만 기억하는 사람은 적다. 그보다는 사실상 냉전의 종식을 선언한 88년 12월 유엔 총회 연설이 그의 대표 연설로 꼽힌다. 이 자리에서 고르바초프는 “소련과 미국의 관계는 지난 몇 년간 우호적으로 변했다”고 선언했다. “모스크바와 워싱턴의 공기 변화로 세계인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며 소련의 무기 감축 일정을 공개했다.

나는 첫 번째 피고입니다

넬슨 만덴라

 1964년 4월 20일 재판에 회부된 피고 넬슨 만델라(95)는 자기 변호에 앞서 이렇게 말했다. 변호사였던 그가 자신과 공범으로 기소된 동료들을 위한 변론을 직접 맡은 것이다. 담담한 문장으로 시작된 그의 긴 변론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인종 분리 정책의 부당함을 사력을 다해 알리는 내용이었다. 자신의 죄목과 복역 기간을 말한 후 시인할 혐의는 시인했다. 이후 빈틈없는 주장이 전개된다. “아프리카인들이 경험하는 부당한 대우는 백인우월주의 정책의 직접적 결과”라는 점을 경험과 주변의 사례를 들어가며 설명한다. 만델라의 변론은 쿠바 피델 카스트로 의장의 “역사가 날 용서할 것”이라는 연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장 인상적인 문장은 변론 말미에 나온다. “저는 모든 사람이 조화를 이루면서 평등한 기회를 누리는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사회라는 이상을 소중히 여겨왔습니다. 제 삶의 목적이자 성취하고픈 이상입니다. 필요하다면 이 이상을 위해 목숨 바칠 각오도 돼 있습니다.”

 만델라의 변론은 당시 삼엄한 검열에도 널리 보도됐고 국제 사회의 뜨거운 관심을 이끌어냈다. 그가 국제적인 인사로 주목을 받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이다. 만델라 석방 운동과 지지 성명이 세계 곳곳에서 이어졌다. 재판부는 같은 해 6월 만델라와 공범 7명에 대해 종신형을 선고했다. 당시 상황을 전한 가디언은 “법정 구속되기 직전 만델라는 엄지를 들어 보였다. 하지만 법정으로 들어오지 못해 밖에서 판결을 기다리던 아내와 딸을 마지막으로 볼 기회는 없었다”고 보도했다. 만델라는 26년간 복역했으며 90년 2월 11일 석방됐다. 94년 5월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그는 또 한 편의 연설을 남겼다. “남아공의 영웅들은 여러 세대에 걸쳐 내려온 전설적인 인물들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진정한 영웅은 국민 여러분입니다.”

 당신들의 안전은 당신들에게 달려 있다

빈 라덴의 동영상 연설 장면.

 2000년대 들어 가장 충격적인 장면을 꼽으라면 단연 2001년 9·11 테러의 비행기 충돌 장면이 수위에 기록된다. 테러를 교사한 오사마 빈 라덴(1957~2011)은 사건 후 3년이 지난 2004년 10월 29일 한 편의 충격적인 동영상 연설을 공개했다. 가운과 터번 차림으로 그는 자신의 건재함을 보여주기 위해 손을 흔들며 18분짜리 연설을 이어 갔다. 연설은 미국과 국민을 향한 경고였다. 그는 “또 다른 맨해튼(9·11 테러)을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팔레스타인과 레바논과 같은 무슬림 국가의 안보를 위협하지 않는 것이다”고 말했다. 이 연설에서 그는 82년 월드트레이드 센터를 공격했으며 이는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을 보고 계획했다고 말했다. “레바논의 부서진 탑을 보면서 독재자는 벌을 받아야 하고 미국의 탑들도 똑같이 부서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미국을 또 공격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라고 엄포를 놓는가 하면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자극하는 발언을 이어 가기도 했다. 빈라덴의 동영상 연설은 미국의 대테러전쟁에 기름을 부었다. 또 4일 후 진행된 미국 대선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 연설에 대해 부시 전 대통령과 존 케리 당시 민주당 후보는 즉각 한목소리로 “용인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지만 안보를 보다 강조해 온 부시의 지지율이 상승했다.

참고 서적: 『세상을 바꾼 25인의 연설』 『세계의 명연설, 시대를 압축하다』 『위대한 연설 100』

마틴 루터 킹 연설 "내겐 꿈이 있습니다" (11분 20초부터 즉흥연설)

케네디 대통령 베를린 연설 "나는 베를린의 시민입니다"

레이건 대통령 베를린 연설 "저 벽을 허물라"

넬슨 만델라 석방 연설 동영상 "마침내 자유"

오사마 빈 라덴 2004년 동영상 "당신드르이 안전은 당신들에게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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