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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고정애의 시시각각

"장관만 세 명 잡아먹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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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고정애
정치국제부문 차장

그는 여러 번 같은 표현을 썼다.

 “민란(民亂) 수준이었다.”

 서울시 정무부시장 기동민. 성균관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공권력과의 충돌을 민주화 운동으로 여긴 시기를 보낸 그임에도 목소리가 팽팽해졌다. 2003년 ‘부안 사태’에 대해 물었더니 그랬다. 정부와 군수가 부안에 사용후 핵연료를 포함한 방사성폐기물처분장을 지으려다 주민들의 거센 반발을 샀던 일 말이다.

 “군수는 집단폭행 당해 중상을 입은 채 수시간 감금됐다.” “도로 위엔 폐타이어가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불타고 있고 LPG통에 불을 붙여 공공건물에 던졌다. 삼지창·낫·염산병을 동원했고 도로 곳곳을 점거했다.”

 당시 보도다. 그가 거기에 있었다. “방폐장은 꼭 필요한 시설인데 우리가 도와야 하지 않겠느냐”는 지인의 설득에, 민심을 살피는 일종의 ‘컨설턴트’ 자격으로 내려갔다. 그는 그곳에서 모골이 송연해지곤 했다고 털어놓았다. “국가적으로 어느 곳엔가 있어야 할 시설이다. 그래도 해당 주민들의 반발을 지역 이기주의로만 매도할 수 있겠는가. 반대 진영엔 친구도 있었는데 그들의 눈망울을 바라보기 힘들었다….”

 그만 느낀 고통이, 교훈이 아니었다. 이미 1990년 안면도에서, 1995년 굴업도에서도 겪은 일이었다. 오죽하면 담당부처 공무원들이 사용후 핵연료 대책을 두고 부안 사태 때 윤진식 산업자원부 장관이 경질된 것까지 포함, “장관만 세 명 잡아먹었다”고 저어하겠는가.

 그러니 2005년 주민 동의하에 경주에 방폐장을 건설하기로 한 걸 두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묵은 과제를 해결했다고 반색한 심리를 이해한다. 그는 “이전 정부가 다 하려고 하다가 실패한 사업들이다. 어쨌든 잘 해결돼 넘어갔다”고 자평했다(『성공과 좌절』).

 실상은 그러나 좀 뭣하다. 사용후 핵연료 대책만 쏙 빼놓았기 때문이다. 지금껏 미해결 상태다. 아니, 시간이 흘렀으니 더 절박한 난제가 됐다. 지금도 사용후 핵연료를 원전 부지에 임시 저장하고 있는데 이 시설이 2016년부터 포화되기 시작하고 이런저런 보완책에도 2024년이면 꽉 찬다.

 그때까지 별도의 저장공간(중간저장시설)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한 전문가는 “원전을 정지시킬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면 별도 시설은 필요 없어지나, 갸웃하는데 그가 아니라고 했다.

 “발전소 내에 추가 저장시설을 지을 수도 있겠지만 현재 지역의 분위기를 보면 어림 반 푼어치도 없다. 신설 발전소의 임시 저장시설로 옮기는 방법이 거론되는데 이 또한 주민들이 용납하겠나. 2030년부터 (수명이 다한) 원전들을 해체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원전 부지 내에 있는 수천t의) 사용후 핵연료를 모두 다른 데로 치워야 한다. 하지만 다른 데 어디?”

 이유 불문하고 중간저장시설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그것도 곧.

 그래서 지난주 한국여기자협회 차원에서, 도쿄전력과 일본원자력발전이 아오모리현 무쓰에 마련한 중간저장시설을 방문했을 때 부러운 마음부터 들었다. 이들은 적어도 50년간은 사용후 핵연료를 어디다 둘지 전전긍긍하지 않겠구나 싶어서다. 무쓰가 유치에 적극적이었다니 놀라웠다. 당국의 안전·재정지원 조치가 신뢰를 받는다는 점에서다.

 그나마 다행인 건 우리도 어제 사용후 핵연료 공론화위가 출범했다는 사실이다. 당국이 그간의 트라우마를 누르고 네 번째 도전에 나선 격이다. 정작 대통령은 실현 가능성이 모호한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에 더 꽂혀 있는 듯하지만 그게 대수랴.

 2003년 부안에 머물렀던 공무원의 소회를 조언으로 전한다. “사전에 충분히 소통하지 못한 상태에서 우리는 이 정도면 주민이 만족할 거라고 여겼지만 주민과 온도 차가 컸다. 그래도 사전에 소통했다면 그리 깨지진 않았을 것이다.” 소통이 또 요체다.

고정애 정치국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