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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 커질 부당내부거래 조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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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공정거래위원회가 2001년 이후 느슨해졌던 재벌그룹의 부당 내부거래 조사를 강화하고 나섰다. 특히 공기업에 대해 하도급 등 불공정 행위에 대해서까지 조사할 계획이어서 공기업 개혁차원의 강도 높은 조사가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해당그룹들은 이미 예견된 것이라며 겉으론 크게 동요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재벌개혁을 강조하고 있는 새 정부에서 이뤄지는 것인 만큼 그룹차원의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4일 공정위 기자회견장에는 주요 그룹의 직원들이 상당수 나와 정보수집을 했다.

공정위가 일년간의 조사계획을 연초에 예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갑자기 들이닥쳐 자료를 훑어가던 관행에서 진일보한 것이다. 그러나 이날 발표된 계획에 대해 적지 않은 논란이 일고 있다.

우선 조사 대상 선정의 형평성에 대해 기업측의 반발이 나타나고 있다. 공정위는 "지난해 6개 그룹에 대한 내부거래 공시 이행실태 점검을 하면서 혐의를 잡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난해 공시 위반이 별로 없었던 현대와 현대중공업 그룹이 조사 대상에 포함됐다. 현대 관계자는 "현대는 자산규모로 10대 기업에도 못끼는데 조사를 받는 것이 억울하다"고 말했다.

또 공정위는 지난해 7월 내부거래 공시 이행실태를 조사하면서 부당 내부거래 조사와는 무관하고 공시만 살펴보는 것이라고 강조했었다. 그러나 이날 발표로 당시 공시 이행실태 조사가 사실상 부당 내부거래의 기초자료가 되었음이 드러났다.

공정위는 올해도 지난해 조사를 받지 않은 10여개 기업의 공시 이행 실태를 조사할 계획이고, 이들 기업은 순서상 내년에 부당 내부거래 조사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부당 내부거래 여부를 어떻게 판단하느냐는 문제를 둘러싼 논란도 예상된다. 비상장 주식의 가치 평가 등 부당 내부거래의 판단 기준이 애매모호한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 4월 개정된 조사 지침이 제대로 적용되느냐도 관건이다.

이 지침은 ▶구조조정 차원에서 불가피한 경우▶분사기업의 자생력을 높이기 위한 지원▶1천만원 미만의 거래 등은 부당 내부거래로 보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명지대 조동근 교수(경제학)는 "부당 내부거래의 잣대가 정확하지 않다"며 "지원을 통해 실질적으로 다른 기업과의 경쟁에서 특혜를 준 경우로 제한해 처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조사결과에 대한 반발도 예상된다. 지난해 7월 말 현재 부당 내부거래에 대한 공정위의 과징금 처분에 대해 기업이 소송을 낸 것은 46건에 이른다. 서울고법은 2001년 9월 "부당 내부거래에 대해 과징금 처분도 하고 형사처벌도 할 수 있게 한 공정거래법은 이중 처벌"이라며 위헌 소송을 낸 상태다.

기업들은 겉으론 담담하다. LG그룹 관계자는 "차분하게 조사에 응하겠다. 조사가 대외 신인도에 저해요인이 되지 않는 방향으로 진행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삼성.SK 등도 성실히 조사에 응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속앓이는 여전하다. 한 그룹 관계자는 "대기업마다 공정위 조사와 관련된 소송을 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라며 "공정위가 대기업에 대해선 무조건 과징금을 때려 놓고 보자는 식"이라고 말했다. 기업들은 또 부당 내부거래 조사과정에서 편법 상속.증여 쪽으로 불똥이 튈까 우려하고 있다.

김영훈.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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