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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어머니께<시 장수철씨의 어머니>장수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어머니, 이렇게 첫 마디를 쓰고는「펜」이 나가지 않는 것은 어쩐 까닭입니까. 너무나 오래 불러보지 못한 탓일까요, 너무나 가슴이 벅차서 그럴까요?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벌써 21년이나 되었다는 것은 거짓말 같고 너무나 가혹한 운명이 원망스럽습니다. 더더구나 80도 훨씬 넘으셨을 연세를 문득 생각했다가는 가슴이 덜컹해서 급히 지워버리곤 합니다.
근 10년을 병석에 누워 계셨던 어머니, 어머니는 그래도 세 번 자리에서 일어나 주셨습니다.
대동강의 도강을 서두르기 사흘째인 12월4일, 그날만은 도강에 성공할 것 같은 예감이 들으셨든지 어머니도, 그리고 옆에서 아버지도 우셨습니다.
『기껏 길게 잡아서 일주일이면 돌아오게 되겠지요.』
이렇게 위로의 말씀을 들이고 저도 울었습니다. 사실 그 당시 멀어야 사리 원 정도까지, 오래 걸러야 1주일이면 반격하는「유엔」군과 더불어 다시 돌아갈 것으로만 믿고 있었습니다.
그랬던 것이 엉뚱하게도 서울에서 제주도까지, 그리고 부산을 거쳐 다시 서울로 환도한지 어언 21년이 되다니 비극치고는 너무 하였습니다.
그저 밤낮으로 염려되는 것은 가뜩이나 대지주였고 화신중역이었다는 죄목으로 옥고까지 치르신 아버지와 10년을 병석에 누워 계셨던 어머니, 거기에다 월남 자 가족이라 하여 받으실 가혹한 박해를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지는 듯 합니다.
저는 만나 뵐 그날을 위하여 꾸준히 문학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날 저는 한아름의 저서들을 안고 제일 먼저 달려갈 것입니다. 그것만이 속죄하는 유 일의 방법입니다.
어머니, 아무 조록 늙으신 아버지를 모시고 끝까지 살아 계십시오. 이 불효자식은 두 손 모아 하느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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