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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광주단지 현지에서 본 사건의 밑바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광주대단지에는 극심한 불경기가 휘몰아치고 있다. 이곳 토지가격인하대책위원회 고문으로 단지주민들의 대변인 역할을 하고 있는 제일교회 목사 전성천씨(전 공보실장)는 『주민의 80%가 실직상태에서 생활난에 허덕이고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대단지의 불경기는 총선거가 끝난 지난 6월부터 시작되었다. 서울시가 분양토지의 전매행위를 억제하며 전매업자에게는 사정된 싯가를 일시불로 하여 토지가격을 받게 한다는 소문이 나자 그동안 흥청대던 부동산 「붐」이 싹 가라앉고 땅 매매가 되지 않는데서 이상불경기는 비롯되었다.
부동산토지매매가 없자 건축 「붐」도 줄어 대부분이 날품팔이를 생활수단으로 삼던 주민이 일터를 잃게 되었다.
지난 5월까지는 부동산 「붐」에 휩쓸려 곳곳에서 공사판이 벌어져 살기가 괜찮았다고 주민들은 입을 모아 부동산 「붐」이 일어 좋았던 때를 그리워했다.
과거 철거민이 분양 받은 20평 땅을 「프리미엄」으로 10만원∼15만원씩 팔았는데 현재는 3만원도 받기가 어렵다고 현지 복덕방에서는 얘기하고있다.
또한 곳곳에 들어차 있는 복덕방에서는 3만원∼5만원씩 20평짜리 철거민분양토지 쪽지를 팔아주면 복덕방비조로 불과 1천원∼1천5백원밖에 받을 수 없으며 그나마도 매기가 없다고 투덜댔다. 지난 5월까지 서울에서 땅 장수가 몰려와 하루 4, 5만원씩의 수입도 올려보았다고 몇 달 전을 아쉬워했다.
부동산 「붐」과 공사장에서 일손을 잃은 주민들은 집집마다, 골목마다 상점을 내고 과잉경쟁을 하고 있다. 2·3m에 불과한 좁은 골목에도 주민들의 살아가려는 의욕을 증명이라도 해주듯 수많은 상점 간판이 들어차 있다. 『상점이 너무 많아 아무리 서로 팔고 산다해도 경기는 줄어들기 마련』이라고 구멍가게를 열고 있는 단대리 허명순씨(37)는 말했다.
광주대단지에서 가장 극심한 생활난을 겪고 있는 곳은 단대리 제2단지 철거민 가수용소. 하왕십리1동295에서 지난 6월14일 철거해온 박규홍씨(42)는 『시내에서는 지게를 져 하루 먹고살았는데 이곳에서는 일거리가 없어 하늘만 쳐다보고 있다』고 말하면서 『오늘 아침에도 죽을 먹고 점심을 걸렀으며 저녁은 국수 한 봉지로 일곱 식구가 먹어야 하는 형편이라』고 한숨지었다.
박씨 가족의 현재 유일한 계획은 서울시가 나눠준 대지분양쪽지를 하루빨리 파는 것. 『팔지 말아야 하는 것을 알지만 당장 입에 풀칠을 하자면 4만원을 받고라도 팔지 않을 수 없다』고 박씨는 말했다.
가수용지에는 이미 분양 받은 20평 토지의 분양쪽지를 생활난 때문에 팔아버리고 갈 곳이 없어 천막 속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 무려 5백여 가구에 2천여명이나 있다. 이들은 새로운 대단지의 두통거리로 가수용된 천막에서 그대로 몇 달을 살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시는 공장유치를 서둘러 취업인구를 늘린다는 목표로 작년 말 6개 공장의 준공식마저 가졌으나 현재 실제로 가동되고있는 공장은 4개 공장에 고용인원은 1천3백명에 불과하다.
더구나 대부분이 여공으로 되어있는 근로자의 노임은 일당 90윈꼴. 한달 월급이 3천원도 안 되는 실정이다.
15세 된 딸을 천지산업의 「메리야스」공장에 직공으로 보내고 있는 호수근씨(45)는 『15세 된 딸이 점심도 제대로 못 먹고 한 달에 3천원도 못 벌기 때문에 자꾸 서울에 있는 술집에 나가겠다면서 졸라대고 있다』고 눈물을 글썽거렸다.
전체단지 주민들은 또다시 부동산 「붐」이 일어나기를 고대하고 있다. 한마디로 부동산 「브로커」가 판을 쳐야 먹고 살길이 생긴다는 것이다. 선거가 끝나자 한전 성동지점 단대리 출장소 건축공사를 비롯, 그나마 몇 채 올라가던 「빌딩」 건축공사 등이 전부 중단되고 말았다. 원인은 자금이 없기 때문이라고 소문이 나 있는데 서울에 있는 돈 많은 부동산투기자가 손을 일체 떼었다는 것이다.
서울시가 10일 난동수습책으로 전매입자들에게도 철거민과 동일한 토지가격 특혜를 준다는 발표에 주민들은 다시 토지매매 「맛」이 일어나기를 기대하고 있다. 토지매매가 성행하면 분양토지의 딱지 「프리미엄」도 오르고 한푼 없는 극빈자인 철거민 경우에도 수입이 지금보다는 나아지지 않겠느냐는 의견이다.
그러나 토지매매 「붐」에 따른 경기회복이란 언제나 일시적인 것.
서울시가 유치할 1백12개의 공장이 전부가동, 3만명 이상이 취업할 때까지 1년 또는 2년, 계획적인 자조근로사업을 비롯한 각 근로공사장을 복지사업으로 벌여 적극취업대책을 마련해주지 않는다면 대단지 주민들의 생활난은 벗어나기가 힘들 것으로 보인다. <고정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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