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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도 용서 안할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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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8월 23일 오후 5시38분. 서울 진관동 뉴타운아파트. 아이 망자 추정. 경찰로 인계.’

 서울 은평소방서에 남겨진 N군에 대한 기록은 불과 여덟 살의 나이만큼이나 간단명료했다.

 N군은 원래 친어머니·여동생과 함께 외갓집에 살고 있었다. 비록 부모가 2010년 10월 이혼하긴 했지만 아버지(35)는 종종 N군을 찾아와 함께 놀아주곤 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재중동포 출신 동거녀 K씨(33)를 만나 지난해 12월 N군을 집으로 데려오면서 비극은 시작됐다.

 세 사람의 관계가 처음부터 삐걱댄 건 아니었다. IT 관련 중소기업을 운영하던 아버지는 다시 오붓한 가족을 꾸리게 되자 가슴이 설렜다. 하지만 N군은 바뀐 환경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새어머니가 불편했다. 아버지는 자꾸만 말을 듣지 않고 거짓말을 하는 N군에게 매를 들었다.

 옷걸이, 회초리로 시작한 매질은 안마기, 골프채로 이어졌다. 매질이 잦아지고 험해질수록 N군의 정서는 불안정해졌다. N군이 전학 준비로 집에 K씨와 단둘이 있는 시간이 늘면서 갈등의 골도 깊어졌다. 아버지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지난 5월 N군을 경남 하동의 기숙 예절학교에 보냈다. N군을 가르쳤던 선생님은 “보통 아이들은 선생님들을 어려워하는데 어머니를 굉장히 무서워했다”며 “상태가 좋아지고 있는데 지난 8월 부모가 데리고 가 의아했다”며 안타까워했다.

 집에 돌아온 N군의 상태는 악화됐다. K씨는 말을 듣지 않고 집안을 어지른다는 이유로 집 밖에 서 있게 하거나 밥을 굶기기도 했다. 사망 전날인 8월 22일 K씨는 “병원에 다녀왔는데 괜찮으냐고 묻지도 않느냐”며 안마기로 N군을 때렸다. 23일 K씨가 외출하자 혼자 방치된 N군은 끝내 숨졌다. 집에 돌아온 K씨는 N군을 흔들어 깨워봤지만 일어나지 않았다. 해외로 출장 가 있던 N군 아버지에게 전화로 사망 소식을 알렸다. 이후 K씨는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손목을 그어 자해했다. 아버지는 집과 연락이 되지 않자 지인을 통해 119에 신고했다. K씨는 구조됐지만 N군은 숨졌다. 장기간 폭행으로 피하출혈 등이 일어나 쇼크사했다는 판정이 내려졌다.

 서울서부지검은 지난달 N군을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학대치사)로 두 사람을 구속기소했다고 29일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두 사람은 폭행뿐 아니라 잠을 자지 못하게 하는 등 가혹행위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달 중순 열린 첫 재판을 전후로 재판부에 열 차례 반성문을 제출했다. 하지만 때늦은 후회였다. 멍투성이의 시신은 화장돼 경기 평택의 한 추모공원에 안치됐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아동보호 전문기관에 접수된 아동학대 피해자는 2003년 2921명에서 지난해 6403명으로 10년 새 두 배 이상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학대로 목숨을 잃은 아동은 10년간 86명에 달한다.

민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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