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필요한 장비 값 부풀려 납품 시도" … 기상청 비리, 산하기관 전 간부가 폭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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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찰 절차가 복잡하고 기상장비가 특수하다는 점을 악용해 기상청의 특정 집단이 특정 업체와 유착, 폐쇄적 공생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2011년부터 소송과 투서·제보가 이어지면서 지난해 현직 조석준 기상청장이 경찰 조사까지 받았던 기상청의 라이다(LIDAR·사진) 장비 도입 비리 의혹과 관련, 당시 장비 구매업무 담당자였던 이승철(56) 전 한국기상산업진흥원 기상지원본부장이 29일 입을 열었다.

 라이다는 공항에서 레이저를 발사하고 되돌아온 신호를 받아 난기류 발생 여부를 탐지, 항공기 사고를 예방하는 데 쓰이는 장비다. 이 사건은 지난해 11월 검찰에 송치됐으나 조 청장은 현직이란 이유로 기소중지됐고, 검찰은 올 5월 수사를 재개했다.

 이 전 본부장은 지난달 참고인 자격으로 검찰에서 진술했던 내용을 요약, 이날 14쪽짜리 ‘라이다 사건의 실체’라는 보고서를 만들어 언론에 배포했다. 그는 인사 청탁과 허위 경력으로 임명됐다는 이유로 지난 7월 해임된 상태다. 소송을 통해 명예회복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이 전 본부장은 보고서 및 기자와의 통화에서 “지난 2년간 구매 업무 전반을 근거리에서 지켜본 결과 기상청 직원들이 그들이 원하는 기업 외에는 시장에 진입할 수 없도록 교묘하게 차단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번 라이다 도입 비리 의혹의 경우 꼭 필요하지도 않은 특정 업체의 라이다 장비를 들여오려다가 경쟁 업체가 낙찰을 받은 ‘실패한 비리’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라이다가 국제적으로 공인된 장비도 아니고 맑은 하늘에서만 작동하는 데다 기존 다른 장비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기상청 고위 관계자도 “라이다 등 비리 의혹이 일부 직원에 집중된 정황이 있어 이번 기회에 뿌리 뽑아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편 지난 5월 김포와 제주공항에 각각 설치된 라이다(납품가 총 72억원)는 현재 기상청 측이 정식 인수를 거부하고 있다. 기상청 산하 항공기상청 연혁진 과장은 “설치 후 주 1회꼴로 고장이 나 신뢰할 수 없는 데다 지금은 고치지도 않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라이다 납품업체인 케이웨더 관계자는 “제품을 현장에 맞게 조건을 맞추는 데 시간이 걸린다”며 “2년간 제품 보증이 되는데도 기상청 쪽에서 사용해 보지도 않고 인수를 거부해 현재 장비를 꺼둔 것”이라고 말했다.

강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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