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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전문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유명한 곰탕집도 어느 정도 돈을 벌기 시작하면 그 질이 떨어지고 불친절하게 된다. 하다못해 빈대떡 같은 것도 마찬가지다. 소규모로 잘할 때는 일부러 골목길을 찾아 들어가 먹게 마련인데 돈을 벌게되고 좀 규모가 커지면 옛날하고는 달라져 있어서 실망하기 일쑤다.
아마도 이러한 것을 느끼는 것은 나 혼자만이 아닌성 싶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음식점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 나라 모든 기업이 공통으로 지니고 있는 큰 문제점의 하나이다.
「유럽」이나 일본을 여행해본 사람이면 누구나 보았겠지만, 대대손손으로 수백년은 이어받아 술집이나, 「오뎅」집, 과자집 등을 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는데 더욱 감탄스러운 것은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을 마치 천직인양, 손님들이 즐기는 것을 자기의 낙으로 삼고 또 돈도 잘 벌고있다.
일본 「긴자」(은좌)에 있는 어떤 「오뎅」집은 상당히 오래된 곳이라고 하는데 수십년 전 동경에 큰 지진이 일어났을 때 이 주인은 「오뎅」국물만을 갖고 도망쳤다고 한다. 「오뎅」은 국물에서 맛이 나는 것이고, 오래 묵은 국물을 이용해야 그 고유의 맛을 내기 때문에 모든 것을 버리고 이것만을 갖고 도망쳤다는 것이다. 그 집 주인은 그 「오뎅」국물을 자기 생명처럼 아낀 그 정신 때문에 오늘의 번창을 가져왔고 갑부가 되었을게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건 이 집주인이 아직도 친절하며 「오뎅」맛도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감친다는 것이다.
우리는 아마도 장사하는 방법을 새로 배워야 할 것 같다. 어떻게 하는 것이 장사를 잘하는 것이고 돈을 잘 버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되 적어도 원칙적인 면에서 우리 나라 사람들이 장사할 줄은 모르는 백성인 듯 하다. 장사뿐 아니라 공장이나 기업체의 관리·운영에 있어서도 매 일반인 것 같다. 항상 불안정한 상태에서 당장 눈앞의 적은 이익에만 급급하는가 하면 도무지 분수에 맞지 않는 기업을 하는 사장들이 수없이 있는 것을 본다.
대기업체에서부터 중소기업체·영세기업체에 이르기까지 액수의 대소를 불문하고 확실한 자기자본을 토대로 완전히 소화가 된 자기 자신의 기업체가 몇 「퍼센트」나 될까. 적어도 자기회사에서 생산되는 제품에 한해서는 언제 어디에 갖다놓아도 출중하다는, 이를테면 자기제품만이 갖고 있는 특유한 가치에 회사의 온 자부심과 생명을 걸고 그것을 유지·발전시키는 것만이 최상의 사명이라고 생각하는 기업체가 과연 얼마나 될까. 이러이러한 일이 재미가 좋다더라하면 자기가 하던 일을 주저 없이 팽개치고 그것에 덤비다가 여러 사람이 폭삭해버리는 예가 셀 수도 없는 형편이다.
곰탕집에서 돈을 벌면 질이 저하되고 불친절하게 되는 것이나, 조그마한 생산공장에서 돈을 좀 벌면 그것을 키워 적어도 여기에 있어서만은 내로다 하기 전에 우선 일확천금을 꿈꾸며 엉뚱한 일을 저지르는 것이나, 오십보백보가 아닐는지. 기업이 완전히 전문화되어서 이 사업은 자기가 아니면 안된다는 자부심을 갖고 그것이 전통화 되어 대대손손에 그 기업이 전승되고 더욱 발전되는 사회가 하루 빨리 이루어졌으면 싶다. [심문택<과학기술연구소장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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