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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공포의 동파키스탄|「야하·칸」정부의 「벵골」인 대량 학살과 그 참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사망 25만, 피난민 6백만-.불과 4개월 사이에 벌어진 이 엄청난 비극은 이상하게도 「뉴스」의 눈길마저 받지 못했다. 철저한 언론봉쇄와 「주권의 행사」라는 명분 아래서 자행되었기 때문이다.
동「파키스탄」의 「벵골」인과 서「파키스탄」의 「판잡」인들 사이의 불화는 이미 널리 알려진 일. 지난 3월 「벵골」인 지도자 「무지부르·라만」이 완전자치를 선언하자 「야라·만」정부는 총칼의 탄압으로 맞섰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문명인의 세계에선 볼 수 없는 참상』을 보여주는 것.
『…처음 군대의 보복학살이 시작될 때에는 산으로 도망쳤었다. …데 며칠 지나니까 마을로 돌아가도록 권유방송을 하는 것이었다. 보복은 일체 없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틴·에이저」인 딸년 둘이 배가 고프다고 보채 길래 미심쩍으면서도 산을 내려왔다. 큰길에 나서자 정부군과 곧 마주쳤는데….』
「고빈다·찬드라만들」은 뒷말을 잇지 못했다. 「녹색제복의 짐승」들은「틴·에이저」밖에 안된 그의 두 딸을 마구 짓밟은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수많은 「악의 꽃들」중 한 예에 불과하다. 고대 「아시리아」인의 전쟁화를 방불케 하는 참상이 곳곳에서 벌어진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동「파키스탄」의 중심지인 「다카」시는 가장 심한 피해를 냈다.
대동「파키스탄」탄압계획은 「무지부르·라만」이 완전자치를 선언하자 곧 수립되었다. 그러나 동「파키스탄」에 주둔하고 있는 군대의 숫자가 충분하지 못하다고 판단, 군정수반 「야햐·칸」대통령은 「무지부르」와 협상을 벌였다. 군대를 수송하는데 필요한 시간을 얻기 위해서였다는 의혹이 짙은 협상이었다고.·
3만 명의 공수작전이 끝나던 날밤「야하·칸」은 「다카」를 떠났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다카」시는 죽음의 도시로 변했다. 6만 명의 군대가 1주일을 두고 총질과 포격을 자행한 것이다.
길 가던 행인, 아기를 업고 장보기 나왔던 부인, 하학 길의 어린이들….『통치권과 주권의 확립』이라는 명분을 업고 군은 「로마」시대의 편병들처럼 날뛰었다. 「다카」시가 죽음과 공포 속에서 질서를 회복하자 이들은 지방도시와 자그마한 마을까지 휩쓸었다. 이렇게 해서 불과 넉 달 사이에 25만 명의 동「파키스탄」「벵골」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참상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6맥만을 헤아리는 피난민이 『죽음보다도 어려운 고통 속에서』신음하고 있는 것이다.
인도의 「캘커타」교외의 질척거리는 진흙 밭에서, 국경지대의 질식할 듯 한 집단수용소에서 이들은 허기와 질병과 절망만이 있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우유통을 받아든 여인의 손이 경련 하듯 떨었다.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으려고 입술을 깨문 채 그녀는 품안의 아기를 흔들어 깨웠다.
앙상히 드러난 뼈마디. 윤기 없이 까칠한 피부…. 그러나 어머니의 얼굴을 쳐다보는 눈동자만은 끝없이 맑고 평화스러웠다. 울음을 참고 슬픔에 젖는 것은 이일을 저지른 어른들일 뿐…·』
그러나 이 영국인 기자가 사흘 뒤 다시 찾았을 때 여인의 몸에는 이미 아기가 없었다. 바로 그 날처럼 여인은 울음을 깨물면서 우유통을 보여줬다. 『너무 허기가 져서 한 모금도…』못 마신 채 죽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참상에도 불구하고 구호의 손길은 겉돌기만 한다. 애견의 장래까지 걱정해주는 인도주의가 이 엄청난 비극만은 거의 외면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웬만큼 성의를 보이던 인도정부도 하루 3백만「달러」씩 드는데는 두 손들고 말았다.
구호의 손길이 주춤거리는 이유는 꼭 한가지. 이것이 「파키스탄」의 주권행사로 인한 부산물이며 섣불리 도와줬다가는 내정간섭이란 비난을 받기 때문이다. 중공은 「야햐·칸」정부의 일이『무조건 옳다』고 나섰으므로 아예 문제가 안 되지만 미국 역시「야햐·칸」의 비위를 거스릴 수 없는 형편. 그래서 탄압의 장본인인 군에 무기를 『줬다 안 줬다』하면서 난처해한다. 한편 ·인도는 「벵골」인 「게릴라」를 양성하고 「벵골」인의 분리독립을 은근히 지원하지만 전면적인 행동은 취하지 못한다. 「야햐·칸 이 전쟁을 일으킬 위험성도 있고 배후의 소련도 말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국제력 관계와 주권이라는 명분으로 「인류 일반에 대한 범죄」인 대량학살이 그대로 묵인되어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높아가고 있다. 피난민 수용소의 참상에도 불구하고 통치권은 「휴머니즘」의 우위에 있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문명인의 야만이 할퀴고 간「벵골」땅.
이 대지에서 자라난 시성「타고르」는 「벵골」을 이렇게 노래했었다.
대지여.
봄을 오게 하라.
어지러운 「망고」술의 향기,
포도주처럼 달콤한 대지를 안고서
그리고 대지여.
가을을 오게 하라.
나는 영글게 익어 가는 들판에서
너의 향긋한 미소를 보리니.

<홍사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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