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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 연구의 전초지…「홍콩」|차주환 <서울대 문리대 교수·중국 문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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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차주환 교수는 70년9월∼71년6월 「홍콩」대학 중문과에서 방문 교수로 있으면서 「한위육조문」「도연명시」「중국 문학 비평」등을 강의했다. 차 교수는 「홍콩」의 중국학 연구 상황을 관찰하고 중공 문제가 대두된 현 단계에 있어서의 한국의 중국 연구 문제를 기고했다. <편집자 주>
「홍콩」 대학의 학생들은 대부분 「홍콩」의 중국인 자녀들로,「홍콩」의 수준으로는 두뇌가 가장 우수한 청년들에 속한다. 식민지 치하의 정부 직영 대학 이어서 그렇다고 생각되지마는, 「홍콩」 대학의 학생들은 자존심과 우월감이 강한데 비해 대학 당국이나 교수들에 대해서는 퍽 순종하고, 한때 학생 징계 위원회의 구성 반대의 물의는 있었으나, 대체로 대립적인 풍조를 조성하지 않는 편이다. 과열된 정치적인 표현도 그리 잘 나타내지 않고, 주로 장래의 취직과 생계 문제를 중요시하고 학업에 열중하는 것도 어느 점 그러한 의식과 연결되어 있지 않은가 하고 느껴진다.
그 동안 조어대(「센가쿠」섬)의 귀속 문제와 중국 어문의 법정 용어 제정 문제에는 학생들이 약간의 태도 표명이 있기는 하였으나 우리가 한국 학생을 생각하는 종류의 행동은 「홍콩」의 대학생 사이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강의 시간과 지도 시간에는 꼭꼭 나와주고 요구하는 과제는 성실하게 제출해주고 해서 방문 교수로 있는 동안의 10개월은 퍽 속 편한 교수 생활을 할 수 있었다.
「홍콩」의 중국학 관계의 동향을 보면 어느 점 「홍콩」의 학자들이 중국학의 바른 방향을 잡고 간다는 은연중의 자부심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그 동안 만나 본 그 곳의 학자들은 상당히 많은데 그들의 태도 그들만이 선입견이나 정치 사상의 제약 없이 바른 판단 밑에서 틀림없는 방향을 잡고 나아갈 수 있고, 또 진정한 학술상의 성과를 분간해서 그 의의를 드러내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이를테면 중공 치하의 대륙 학자들의 논저를 평할 때는 열성을 드러내는 논조나 비판은 그들의 본의가 아닌 것으로 돌리고, 그 나머지 가운데에서 취할 것이 있는가를 찾아보는 것이고, 중국 이외의 학자들의 연구 성과에 대해서도 대 중국 정책과의 연결의 유무와 학적 태도에 있어서의 중국 멸시의 기풍 등에 혐오를 느끼기도 하며 볼만한 것에 대해서는 외국인으로서 그만하기가 어렵다는 태도로 임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렇기는 하나 「홍콩」의 중국 학계에는 각종의 연구 기관이 있어 그곳을 통해 학술 활동을 부단해 전개하고 있고, 또 수준을 넘어선 학자들이 많아 꽤 많은 성과가 나오기는 하나 획기적인 업적을 보여주는 예는 찾아보기 힘든 편이다.
그 밖의 이유도 있겠으나 「홍콩」의 풍토가 본래 학술 문학에 치중하는 것이 못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가 고도 여겨진다.
「홍콩」에서는 도서 출판업이 지방 번영에 비해 극히 부진한 것이 현실이다. 중공 치하의 중국 학계는 지금의 정권의 정치 요구를 가지고 과거의 작품을 비판하는 작업이 지배적이다.
그런데 그 정치 요구가 시종 일관된 것이 못되기 때문에 그 고장의 학자들이 당황하지 않을 수 없는 계제가 적지 않을 것임은 넉넉히 짐작할 수 있다. 문화 혁명이 시작되어서부터 책이 덜 나오게된 데는 혼란 때문에 저술과 출판이 부진한 탓도 있었겠지만, 집권자의 정치 요구가 종잡을 수 없어 이른바 학술 활동을 전개하기 힘들었기 때문이었기도 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중공 치하에서 한방 의학의 연구가 상당히 발달했다는 일이다.
신식 의약의 도입 보급이 차단된 상태에서 가능한 길이 한방 의약의 연구였다는 것으로, 그 방면의 연구가 정리되어서 책으로 발간되어 나온 것이 꽤 여러 가지 있다.
「홍콩」에서 경험한 것을 토대로 생각해 본다면 중공도 이미 여러 전문가들이 발표한 바와 같이, 여러 모로 변질되어 가고 있기 때문에 그곳에서의 중국학도 그 연구 방법이나 태도가 바뀌어 질 것이고, 그 바뀌어지는 방향은 역시 정치 제일주의를 탈피하고 새로운 경지를 개척해서 국제 학술계의 순수한 진리 탐구를 위주로 하는 방향으로 접근해 오고야 말지 않을까 여겨지기도 한다.
한데 「홍콩」을 일반적으로 상업 도시로만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대륙에 대한 관문으로서 일본 등 「아시아」 각국에서 학자·학생들이 몰려와 중국의 전통적 학문은 물론 중공 문제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넘겨버릴 수 없다.
내가 「홍콩」에 머무른 동안에는 학술 관계로 「홍콩」에 머무른 사람은 혼자였으며, 그것도 연구를 목적으로 한 체류가 아니고 「홍콩」 대학이 초청하여 강의를 맡긴 것이기 때문에 순수한 학문 연구의 한국인은 없었던 것이다.
우리 정부가 한사람의 중국·중공 연구가를 「홍콩」에 보내지 않았다는 것은 너무 소홀한 정책의 소산인 것 같다.
중공 문제가 크게 대두하면서, 또 앞으로 중국 본토와의 관계를 갖는다는 경우를 생각한다면 우리의 준비는 너무나 뒤진 감이 있다. 늦으나마 지금이라도 중공의 관문인 「홍콩」 에 우리의 학자·학생들을 파견해서 중공문제·중국문제·인접국 문제를 다룰 역량을 기르도록 해야겠다. 정부의 실효 있는 시책이 요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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