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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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시정 인들은 이제 분분한 화제 거리 하나를 잃었다. 어느 당의 당수선출문제가 그처럼 시정화제의 인기(?) 품목이었던 경우는 없었을 것 같다. 그것은 「누구」를 뽑느냐가 내내 수수께끼로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역대의 정당들은 당수를 지정인의 당연직으로 생각해온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전당대회란 하나의 요 식에 불과했다. 정당의 발생과정을 놓고 보면, 당수는『누구이어야 한다』는 생각은 당연하다. 이런 현실을 갖고 있지 못한 신민당의 경우 불행이라면 불행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당내 민주주의의 진보』라고 둘러쳐서 말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그렇지만 글쎄….이번 신민당의 그 파란곡절을 두고 과연 그렇게 성급히 평가 할 수 있을지는 궁금하다. 이런 정치평론은 잠시 덮어두고 우선 그 당수는 어떤 직책의 자리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당수위치의 강약은 당내 요직에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 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신민당의 경우 「강」 쪽이다. 사무총장·원내총무·공책심의회의장·훈련원장·인권옹호위원장 등은 이른바「당6역」이라고 말한다. 게다가 국회부의장(1명)이 있다. 이들을 지명할 수 있는 권한이 당수의 손에 쥐어져 있는 것은 그 위치의 비중을 높여준다. 당헌상의 장치로는 명실공히, 「당권」 의 자리인 것이다.
그러나 당수와 대통령후보는 결국 대의원의 표수에 의해 뽑힌다. 대의원이란 절대 다수가 지구당대회에서 선출된다. 신민당의 당헌은 그것이 매년 4월로 되어있다. 4월은 신민당으로서는 「당권의 달」 인 셈이다.
신민당은 이제 어느 해의 전당대회도 조용할 날이 없게 되었다. 적어도 이것은 75년까지는 그럴 것이다. 당수와 대통령 후보가 분리된 상황에선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결국 당수선출문제가 그처럼 법석을 부리게 되는 것도 그 문제의 75년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는 대통령 후보가 의례 당수의 위치에 있게 된다. 따라서 법석은 곧 대통령후보 지명에만 일원화되어있다.
이것은 미국뿐만 아니라, 내각책임제를 하고있는 영국도 마찬가지이다. 원내 다수세력을 확보한 당의 당수가 곧 수상이다.
정치권력의 핵이 무엇인가를 놓고 생각하면, 그것은 너무도 필연적인 논리이다. 당수와 후보의 분리는 공연히 정당 운영의 혼란과 비용만 가중시키는 것 갈다.
신민당은 바로 그 점에선 치명적인 약점을 갖곤 있다. 「당의 당수」냐 「파벌의 당수」냐가 가 분명치 않은 경우라면 그것은 「주인 없는 집」이나 무엇이 다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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