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미섬유협상, 재개의 조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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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미섬유회담이 이달 중에 재개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 6월 회담이 실패한데 이어서 재개될 이번 회담은 6월 회담에서 상호간에 양보선을 제시한 사실이 있으므로 이를 기초로 해서 의견이 교환될 것으로 보아 무방할 듯 하나 즉 그동안의 협상과정에서 상호 양보한 선을 더욱 좁히자는 전제를 가지고 협상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섬유업계가 협상재개를 반대하는 입장을 이미 밝힌바 있는데도 불구하고 정부당국이 협상재개에 응하겠다고 적극적인 반응을 보인 사실은 업계로서는 불만일 것이다. 그러나 이미 6월 협상에 정부가 응했던 것이 기성사실화 하였으므로 이제 와서 업계가 협상재개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업계를 위해서나 정부를 위해서나 결코 소망스러운 일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지금 객관적인 정세를 보아서는 업계가 협상재개자체를 끝까지 반대하는 것이 반드시 현명한 일로만 보기 힘들다는 점도 고려해야만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의견으로는 업계와 정부는 오히려 한·미간 협상이 다시 시작하기 전에 우리측의 최종적 타협선에 관하여 충분히 의견을 교환해서 협상전략을 가다듬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한다.
더 말할 것도 없이 무슨 교섭이든지 간에 정부와 업계의 의견에 큰 차이가 있어 공동보조를 취하지 못할 때 우리측의 대미교섭력은 그만큼 약화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업계가 강경한 발언을 함으로써 정부대표가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어 가도록 측면지원하는 방식도 고려할 수는 있겠으나, 그럴수록 정부와 업계는 서로 양보할 수 있는 최후선을 사전에 결정해두는 일이 협상의 질서 있는 추진을 위해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우선 강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는 협상재개의 전제라 할 6월 회담의 성과를 정부당국이 사전에 충분히 재검토할 것을 바라고자 한다. 전해진 바로는 우리 정부측은 6월 회담에서 42%의 수출증가율을 후퇴시켜 25%선을 제시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에 대하여 미측은 최초의 제의인 5%선에서 11%선으로 약간 양보하는 수정제안을 했었으나 한·미간에는 여전히 14%의 이견이 가로놓여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재개될 협상에서는 이 14%의 「갭」을 어떻게 메울 것이냐 하는 점이 문제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솔직히 말하여, 최근 일본·중국 등이 취한 동향에 미루어본다면 한국측이 앞으로도 끝내 25%선을 고집하는 한, 협상을 재개한다는 것부터가 무의미한 것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견해는 마찬가지로 미측도 앞으로 11%선을 고집한다면 협상재개를 제의할 필요는 애당초 없다할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협상재개를 합의했다는 사실은 곧 25%와 11%의 사이에서 조정한다는 것을 양측이 묵시적으로 양해했음을 이미 전제한 것이라고 평가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협상은 이제부터가 중요한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6월 회담에서 밝혀진 14%의 차이를 어느 쪽이 더 유리하게 좁히느냐는 협상당사자의 능력에 달려 있는 것이므로 우리는 정부와 업계가 충분한 사전준비를 통해 이러한 능력을 갖추기를 촉구하고자 하는 것이다.
무릇 모든 국제무역상의 협상에서 감정이나 고집보다는 이성과 신축성이 훨씬 바람직하다함을 감안할 때 정부나 업계는 보다 능률적인 협상추진자세를 갖추기를 우리는 기대하고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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