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도 책을 읽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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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어느 날 근무시간의 틈을 이용하여 책을 보다가 어떤 승객한테서 『차장도 책을 읽나』하는 말을 들었다. 나로서는 무심코 넘겨버릴 수 없는 말이다.
차장들은 책을 읽으면 안되나, 묵묵히 생각해보았다. 「버스」차장이라면 무식하고 교양 없는 존재로만 단정지어버리는 사회에선 작업「가운」을 입고 더구나 근무 중 차창에 기대서서 책을 읽는 모습이란 한낱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나로서는 어쩐지 씁쓸한 기분이었다.
내 나이 겨우 18세, 좀 더 부유한 가정에 태어났더라면 나 역시 교복을 입고 학교에 다니는 어엿한 학생이겠지만 어쩔 수 없이 교복대신 때묻은 작업「가운」을 걸치고 「버스」에 매달려 온종일 인파를 향하여 소리쳐야만 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정말 너무나 벅찬 작업 속에서 육체적 정신적으로 받는 고통에다 사회인들의 멸시에 찬 눈길 등 진정 우리들만이 알고 우리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괴로운 생활이라고 표현하고싶다.
그러나 직업과 주위환경에서 오는 고통이 심할수록 나의 가슴속엔 배우고픈 욕망이 더욱 용솟음친다. 그리하여 항상 나의 마음속엔 어떻게든 배워서 나도 남못지 않게 떳떳한 생활을 해보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비번날엔 강의록과 싸우고 근무 중에도 영어단어 외우기와 책읽기에 최선을 다해본다.
이러한 나에게 승객은 물론 일부동료들까지도 비웃는 태도로 대하는데는 외로움과 서글픔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차장이란 직업 속에서 배움의 길을 찾는다는 것이 제격에 맞지 않는 건방진 말인지는 몰라도 나는 이 길을 계속하리라고 하루에도 몇 번씩 다짐해 본다. [이신자(18·충남홍성군 금마시장 내 천주교회웃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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