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함대 역할의 일본 분담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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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방일중인 「레어드」미국방장관은 일본정부지도자들과의 회담에서 미국의 정치·경제면을 고려, 미국의 우방들이 보다 더 큰 군사적 책임을 맡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동경으로부터의 보도는 미국이 국방비에 국민총생산의 7%를 할당하는데 비해 일본은 1%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적, 일본의 능력으로 보아 조선부문에 보다 더 큰 기여를 할 수 있으리라는 견해 밑에 미국측은 일본이 일본해역에 배치된 미 제7함대의 일부를 포함하여「아시아」의 군사전략면에서 보다 더 큰 역할을 담당할 것을 요구했다고 전한다.
「닉슨·독트린」에 의거, 미국이 「아시아」주둔병력을 급속, 또 대담하게 감축하고 있는데, 이로 말미암아 생겨날 수 있는 힘의 진공상태를 메우기 위해서 미국의 우방들이 보다 더 큰 군사적 책임을 맡아야할 처지에 놓여 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일본을 제외한 미국의 「아시아」맹방들은 그 국력으로 보아 현재 이상의 군사적 책임을 부담할 수 없다는 것 역시 시인을 아껴서는 안될 사실이다. 오직 일본만이 의사만 있으면 보다 큰 군사적 책임을 맡을 능력을 갖고있는 것이다.
현재 일본의 국방비는 국민총생산의 1%미만이고 국가예산의 7%밖에 되지 않는데, 일본이 이처럼 근소한 국방비지출을 가지고 국가의 안전과 경제번영을 누리고 있는 것은 미국과 일본주변에 있는 나라들이 과중한 군사적 부담을 하고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이 세계를 지배하는 시대가 이미 종말을 고하고 미·일·「유럽」·소·중공 등 5대 세력이 세계를 분담 지배할 수밖에 없는 오늘의 세계정세를 에누리없이 주시한다고 하면 강대국으로서의 일본이 그 자체를 방위하고 나아가서는 「아시아」의 집단안보태세를 갖추는데 있어서 종전보다 훨씬 더 큰 군사적 책임을 져야한다는데 대해서는 의문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아시아」로부터의 미군사력 후퇴에 대신하여 과연 어느 만큼이나 군사적 책임을 더 지겠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여태껏 일본은 명확한 태도표시를 보류하여 왔다. 이는 바야흐로 미·중공관계, 일·중공관계가 접근·화해를 모색하고 있어서, 동「아시아」의 경제가 심한 유동상태에 놓여있고, 또 자주외교단계에 들어선 일본이 「아시아」방위의 주도적 역할을 맡고 중공과 대결하느냐 혹은 중공과 평화공존하면서 경제대국으로만 행세할 것이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서 국론의 통일을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설령 미국이 일본의 군사적 책임증대를 성화같이 독촉한다 하더라도 현하 「아시아」정세의 유동적인 상태가 어떤 방향으로든지 안정을 찾고 또 일본자체가 국제권력정치상 진로를 명백히 하지 않는 한 미국의 소원이 성취되리라고 속단할 필요는 없다. 그뿐더러 병력의 해외출동은 기본적으로 금지하고있는 일본의 평화헌법으로 보아 일본으로서는 설사 그들이 종래 미 제7함대가 맡아오던 「아시아」방위임무의 일부를 담당키로 한다는 원칙에 합의한다 하더라도, 곧장 일본의 함정이나 군용비행기의 출동범위를 어디까지 인정할 수 있겠는가는 그 해석문제만을 가지고서도 격심한, 논쟁을 면키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미국이 종래 제7함대가 수행해오던 「아시아」방위임무의 임무를 끝내 일본에 담당시키고자, 꾸준한 압력을 가한다면 일본이 이를 끝까지 거부하지 못할 가능성은 다분히 있는 것이다. 이런 가능성이 현실화한다고 상정할 적에 우리의 국방외교는 어떻게 대응할 작정인가. 지난날의 한·일 관계 및 오늘의 한·일 관계로 보아 이 문제는 자못 심각한 것이다. 정부·여당과 야당은 이제 온 국민의 지혜를 모아 변화하는 국제정세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국가적 자세를 갖추어 나가는데 조금이라도 유루가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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