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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원단·디자인·재봉 흠잡을 데 없이 완벽 문제는 언어장벽이더라”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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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6호 21면

서울패션위크에 온 싱가포르 디자이너들. 왼쪽부터 캐롤린 칸, 길다 수, 레이슨 탄, 폴린 림, 마에 팡, 알피 렁.

23일 막을 내린 ‘2012 추계 서울패션위크’에선 유독 해외 디자이너들의 이름이 눈에 띄었다. 제너레이션 넥스트(신진 부문)엔 태국·중국의 디자이너들이 등장했고, 메인 무대인 서울 컬렉션엔 싱가포르 디자이너들이 합동 쇼케이스를 꾸몄다. 여기엔 에이울·폴린닝·레바세르·마에팡·릴로애슈비 등 여성복 브랜드와 커스텀 주얼리 브랜드 캐리 케이까지 6개의 패션 브랜드가 참가했는데, 우아하고 여성스러운 드레스부터 웃음이 절로 나오는 프린트 티셔츠까지 각자 개성 넘치는 싱가포르 패션을 선보였다.

서울패션위크서 컬렉션 연 싱가포르 디자이너들

이런 해외 디자이너 무대가 한 번의 이벤트일까 싶지만 그것도 아니다. 싱가포르는 서울시와 패션 교류 프로그램을 만들어 2012년 춘계 시즌 이후 계속 서울을 찾고 있다. 흥미로운 건 싱가포르에도 매년 대규모 패션위크가 있는 데다, 각자가 이미 뉴욕·홍콩·호주 등 해외 시장에 진출해 주목받고 있는 디자이너라는 것. 그러니 ‘왜 굳이 서울패션위크에 손들고 찾아올까’라는 궁금증이 생길 수밖에 없다.

21일 패션쇼를 마친 그들을 만나봤다. 에이울 디자이너 알피 렁을 제외한 5명은 모두 경력 2~6년 차의 샛별들이었다. 이름값이나 고정관념보다 자신들의 취향과 안목을 중시하는 ‘젊은 피’였다. 그래서인지 일본이나 중국보다 서울이 훨씬 더 매력적인 시장이라는 얘기를 자신 있게 꺼냈다. “일본은 너무 보수적이고, 중국은 양적으로는 가능성이 높지만 질적으로는 만족스럽지가 않아요. 디자이너라면 아무래도 많이 파는 것만 중요한 게 아니라 배우는 것도 있어야 하니까요(마에팡).”

레바세르의 컬렉션

그런 점에서 한국 시장은 개방적이면서도, 독창적 스타일이 넘치는 곳이라는 얘기였다. 릴로애슈비의 레이슨 탄은 “한국은 럭셔리 브랜드와 동대문 시장, 자국 브랜드가 공존하면서 다양한 패션을 받아들일 줄 안다”면서 “나 같은 외국 신생 브랜드에도 가능성이 열려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피력했다. 그의 말처럼 실제 패션위크 기간 중 갤러리아 백화점은 참가 디자이너들의 브랜드를 모아 팝업스토어를 열기도 했다(31일까지.)

이들은 서울 그 자체가 멋진 도시, 영감을 주는 도시라는 데에도 만장일치 의견을 냈다. 마에팡은 서울이 뉴욕보다 더 스타일리시한 도시라는 극찬까지 했다. “길거리에서 매장 쇼윈도나 지나가는 사람들만 봐도 영감을 얻어요. 명동에 1만원짜리 티셔츠를 입고도 디자인이며 재봉이 모두 좋아 놀랄 때가 많죠.”

알피 렁 역시 “한국에서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에너지와 영감을 얻는다”고 얘기했다. 여기에 한국 가요나 영화가 인기를 끌면서 싱가포르 디자이너들 중엔 패션뿐 아니라 한국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고 한다. 레바세르의 디자이너 길다 수는 자신의 브랜드명을 소개하며 “매일 많이 꿈을 꾸는 사람이란 뜻이에요”를 또박또박 말하기도 했다.

인터뷰 중 귀가 쏠리는 대목이 있었다. 그들의 입에선 아시아 시장이란 말이 여러 번 나왔다. 신진이라는 이유가 크겠지만 비슷한 수준의 국내 디자이너들이 국내에서 입지를 다지고 뉴욕·파리 등으로 진출해 글로벌 브랜드로 키우겠다는 포부를 갖는 것과는 사뭇 달랐다. 여기에 폴린링의 폴린님은 한마디로 “나는 아시아가 좋다”라는 답을 내놨다. 아무래도 서양과는 문화권이 달라 정서적 차이가 있을 터, 그래서 공감대가 있는 아시아 시장에서 내실을 기하겠다는 뜻이었다. 싱가포르 디자이너들에 대해 “젊지만 실속과 시장성을 판단하는 능력이 강하다”는 전문가들의 평가가 이해되는 부분이었다.

만남을 마무리하며 한국과 한국 패션에 대해 칭찬 일색인 이들에게 ‘단점으로 보이는 게 뭐냐’고 물었다. 당황하며 손을 내젓던 그들이 한참 뒤에야 꺼낸 답은 ‘영어’였다. “서울에서 질 좋은 원단을 발견해도 영어가 안 통해 못 사갈 때가 있어요. 완벽한 재봉과 멋진 디자인을 제대로 설명해 줄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도 아쉽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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