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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득의 인생은 즐거워] 그녀의 정체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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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6호 30면

엘리베이터 안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한참 지난 때였으니까. 이 팀장은 엘리베이터에 타면서 딱히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목례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목례하듯 가볍게 고개를 숙인 것이지만.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는 사람은 모두 여자다. 그것은 굳이 고개를 들어 한 사람씩 얼굴을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세 개의 치마와 여섯 개의 여성용 구두. 여자들 속 남자 한 명은 어쩐지 어색하고 민망하다. 이 팀장은 따로 눈 둘 데가 없어 엘리베이터 층 표시등의 숫자만 본다.

시선은 빛처럼 파동이면서 입자인 것일까? 누군가 자신을 계속 쳐다본다는 느낌이 든다. 이 팀장은 고개를 돌려 자신을 쳐다보는 여성을 본다. 역시 한 여성이 자기를 보며 웃고 있다. 회사 동료이거나 아니면 회사를 방문했다가 돌아가는 고객일 것이다. 어느 쪽이든 인사를 하는 것이 좋겠다. 무엇보다 아름다운 여성이지 않은가.

“안녕하세요?” 그 여성도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나누고도 이 팀장 쪽에서 아무런 말이 없자 여성이 말을 건넨다. “이 팀장님, 이번에 바뀐 광고 저는 좋던데 반응이 좀 어때요?” 누구일까? 그러고 보니 낯이 꽤 익다. 분명히 이 팀장이 아는 얼굴이다. 게다가 자신에게 팀장이라고 한 것을 보면 직장 동료인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왜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일까? 이 팀장은 대답한다. “대체적으로 좋은 반응인 것 같습니다만 좀 더 지켜봐야죠.”

여성은 이 팀장을 보며 빙긋 웃는다. “오늘 점심 혼자 드시는 건가요?” 이 팀장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잠시 생각한다. 설마 함께 먹자는 제안은 아니겠지. “아뇨. 약속이 있어서요. 혼자 식사 가는 거예요?” 뭐가 그렇게 우스운지 여성은 이번에도 빙글빙글 웃는다. “저도 오늘 약속이 있어서요. 그런데 팀장님, 저 누군지 아시죠?”

그건 이 팀장이 묻고 싶은 질문이다. 분명히 아는 얼굴인데 누구인지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이럴 때 솔직하게 모른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정직은 최상의 정책이니까. 그러나 어떤 경우 솔직함은 예의 없고 눈치 없는 사람의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여성이 묻는 “저 누군지 아시죠?”라는 물음에는 상대방 남성이 당연히 알 것이라는 기대가, 확신이 들어있다. 그러니까 이 팀장은 이렇게 대답한다. “그럼요. 당연히 알죠.” 이 팀장은 뭘 안다는 것인가? 여성은 기대에 찬 눈으로 여전히 웃으며 이 팀장의 대답을 기다린다.

“함께 근무하는 직장 동료잖아요.” 정확한 대답은 아니지만 아주 틀린 대답도 아니다. 그러니까 이 팀장으로서는 적당한 대답을 한 셈이다. 누구인지 아느냐고 물었는데 함께 근무하는 동료라고 답한 것은.

드디어 엘리베이터가 2층 로비에 섰고 문이 열렸다. 두 사람은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식사 맛있게 하세요.” “팀장님도요.”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는 동안에도 이 팀장은 줄곧 그 여성이 누구인지 생각해내려 애썼다. 기억이 나지 않았다. 사무실로 돌아와 책상에 앉아 결재 받을 서류를 준비하면서도 이 팀장의 머릿속은 그 여성에 대한 의문으로 가득 차 있었다. 결재를 받기 위해 대표이사 사장실로 들어설 때, 그때 비로소 이 팀장은 기억이 났다. 왜냐하면 그 여성이 사장실에서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기획부장이다. 눈물과 웃음이 꼬물꼬물 묻어나는 글을 쓰고 싶어한다. 『아내를 탐하다』 『슈슈』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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