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왕 암스트롱 영면|심장병으로 6일 뉴요크 자택서|그의 생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세계적인 「트럼피터」미 20세기의 「재즈」왕인 「대니얼·루이스·암스트롱」(「팬·네임」「루이·암스트롱」)이 6일 하오 6시30분 (한국 시간) 심장병으로 「뉴요크」의 자택에서 영면했다.
향년 71세.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로크」「포크」등 새로운 음악의 조류에 밀려 「재즈」는 사양길에 접어들었으나 「암스트롱」은 의연하게 대중 음악계에 군림하여 최근까지도 고령에 관계없이 활발한 연예 활동을 가졌다.
「암스트롱」은 「재즈」의 생애가 그렇듯 1900년 「뉴올리언즈」의 빈민가, 그곳에서도 가장 미천한 날품팔이 아버지와 남의 집 하녀 노릇을 하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퇴폐적인 분위기를 대변하는 사창가와 선술집의 즉석 연주를 곧잘 흉내내던 「암스트롱」 은 11세때 「코넬」주자인 「벙커·존슨」의 눈에 띄어 음악 수업을 시작했다. 당초 그는 「싱거」로서의 출발을 시도했으나 「트럼피트」의 매혹에 사로 잡혀 「트럼피트」에 열을 쏟았다. 그러나 그의 독특한 「허스키」, 능란한 「제스처」는 「트럼피터」로 뿐만 아니라 「싱거」로서도 대성할 기틀을 마련해 주었다.
우리 나라에서도 널리 알려진 『성자가 행진할 때』,『싱·싱·싱』등 그의 연주와 노래들은 그의 대표적 작품.
「암스트롱」은 음악계에서만 아니라 영화계에서도 많은 작품을 남겨 『상류 사회』『글렌·밀러·스토리』등 여러 영화에 출연했다. 그는 미국의 음악 사절로 여러 차례에 걸쳐 세계 각국에 연주 여행을 했으며, 63년엔 한국을 다녀가기도 했다.
1백3kg의 거구에도 불구하고 「리틀·루이스」란 애칭을 가지고 있는 「암스트롱」은 사망하기 직전까지도 매일 1시간씩 가을 무대에 대비, 무리한 연습을 해왔다. 그의 4번째 부인「루실」여사는 『장례 절차는 정하지 못했으나 그분의 뜻에 따라 간소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4일 71세의 생일을 맞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