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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 「남북 대좌」는 가능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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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법적 문제>정치 판단 서면 절차 문제 안돼|유엔군 구성 구체적 규정 없어 유엔군 대표 일원으로 가능|군의 대화가 정치 성격 띨 수 있나 의문|이한기 <서울 법대 교수·국제법·법박>
휴전 협정에 한국이 조인하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에 한국 측에서 수석 대표를 맡기가 어려운 것 같지만 정부 대표가 아니라 「유엔」군의 대표로 생각하면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지금도 한국군의 장성 1명이 대표단 (5명)의 한사람으로 참여하고 있다.
한국이 「유엔」에 가입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있으리라는 견해도 있으나 「유엔」이 한국전에 개입한 근거 (결의안) 에는 「유엔」군의 구성에 관한 구체적인 규정이 없기 때문에 반드시 문제돼야 한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유엔」의 군사 조치에 관한 규정 (국제 연합 헌장 42조) 은 『국제 연합 가맹국의 공군·해군 또는 육군에 의한…』이라고 규정되어 있다. 따라서 한국군은 「유엔」군의 구성원이 아니지만 한국군의 작전 지휘권에 관한 한·미 협정에 의해 한국군은 「유엔」군사령관의 지휘를 받고 있으며 이에 따라 회담 대표의 임명권자인 「유엔」군사령관이 한국군 장성을 판문점 회담 대표로 임명하면 그 대표의 자격에 하자가 없을 것 같다. 그러므로 한국인이 수석 대표를 맡을 경우 한국 정부가 휴전 협정을 준수하겠다는 확인이나 또는 정부의 신임장 같은 것은 필요치 않을 것이며 따라서 북괴에 대한 국가 승인의 결과는 가져오지 않는다.
만일 정부의 신임장이 필요하고 또 내게될 경우에도 상대방에 대한 국가 승인이 아니라는 점을 유보 사항으로 명백히 할 수 있다. 「이스라엘」이 「유엔」에 가입할 때 「아랍」제국이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치 않겠다는 유보를 붙여 동의했을 때 유효했다.)
오히려 공산 측에서 절차상의 문제를 정치적으로 악용하려든다면 거기서 장애가 생긴 것이다. 한국군을 수석 대표로 인정할 수 없다든가, 선서나 신임장을 요구하는 경우를 예상치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최근의 정세 추이로 보아 한국군의 작전 지휘권 환원이나 더 나아가서는 어느 시기에 「유엔」 군사령부의 해체도 가상해야 하는데 그럴 경우에는 판문점 회담의 한국군 수석 대표의 법적 지위도 일단은 재론될 수 밖에 없어 수석 대표의 자격 문제는 이런 장기 전망까지 고려해야 할 것이다.
특히 휴전 협정 B항 제35조는『군사정전위는 적대 쌍방 사령관들에게 본 정전 협정의 수정 또는 증보의 건의를 제출할 수 있다』고 규정했는데 대표 교체나 회담 성격의 변모는 이 협정 수정을 통해서도 가능하다고 볼 수 있는데 이 경우엔 반드시 한국 정부와 사전 협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로저즈」발언의 법적·절차상의 문제보다도 정치적인 측면에 중요성이 있다는 점이다.
수석 대표의 자격 문제나 교체 절차는 그 정치적 의미에 비하면 큰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그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판단이 있어야 하며 수석 대표 교체에 따른 잡음이 없기 위해서도 정치적 보장이 선행돼야 할 것 같다.
「로저즈」소장은 『남북간의 직접 대화가 필요할 때며 수석 대표 교체로 판문점 회담을 정치 회담으로 발전시켜 남북간 접촉의 성격을 변모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견해를 말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과연 직접 대화가 정치 회담의 성격을 띨 수 있겠느냐, 또 대화가 순조롭게 성립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은 따로 남게된다.
우선 UN군의 수석 대표는 한국 정부의 대표가 아니라는 점 때문에 성질상 정치 회담이 될 수 없으며 또 지금의 상황에서 직접 대화가 「스무드」하게 이루어 질 것 같지 않다.
우리의 문제를 직접 당사자가 아닌 사람을 통해 얘기하는 것이 반드시 정상은 아니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간접 대화가 효과적일 때가 있으며 판문점 회담이 바로 그 예인 것 같기 때문이다. 수석 대표가 교체되어 회담 분위기가 더욱 악화된다면 정치 회담이 아니라 정전회담의 기능까지 저하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정치적 사정>군사적 적대 관계를 정치적 성격으로||한국에서의 교전 당사자인 유엔의 위치 변경의 포석|미·소의 현상 유지 전략의 일환|노재봉 <서울 문리대 교수·정치학·정박>
군사정전위원회의 「유엔」측 수석 대표인 「로저즈」 소장이 지난 6월22일에 휴전선을 비무장지대로 하여 민간인에 의한 평화적 사용을 제의했을 때의 고조된 분위기와는 달리, 이번에 정전위의 수석 대표를 한국인으로 바꾸어야한다는 발언에는 충격적이면서도 조심스런 반응의 분위기를 이루어 놓고 있다.
「로저즈」소장의 발언이 AP 기자를 통해 행해졌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생각하더라도 단순히 관측 기구를 띄워보는 의도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여겨진다. 더구나 그 발언의 내용이 완전히 정치적인 것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앞서 말한 두 발언은 유기적인 관련을 가지면서도 그것을 뛰어넘는 고차원적인 전략의 일환이라는 것은 쉬이 판단이 가는 일이다.
그가 말한대로 한반도의 상태가 평화가 아닌 휴전 상태에 불과하며 아직도 적대 관계가 지속되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것을 그의 발언에 비추어 보면 적대 관계를 군사적이 아닌 정치적인 성격으로 우선 변모시켜 놓고 그 가운데 외교적인 해결을 시도해야 한다는 뜻이 된다.
이러한 정책적 또는 정치적 발언의 배후에는 「닉슨·독트린」「닉슨·좌등 공동 성명」, 그리고 미소의 「데탕트」에 따르는 현상 유지적인 세계 전략 등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구체적으로 극동 정세와 어떤 관련을 갖고 표현되었던가는 작금의 움직임이 말해 주고 있다. 현재 월남전의 해결이 고차적인 정치 협상으로 뻗어나갈 기세를 보이고 있는데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월남 전후의 암으로 남아 있을 한반도의 긴장 상태를 동시적으로 해소시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미소의 현상 유지 정책이 필요로 하는 변경을 뜻하는 것이다. 강대국간의 현상 유지는 이렇듯 우리에겐 커다란 변경을 안아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미·소의 현상 유지 정책은 중공의 국제 세계에로의 진입을 도우면서 동시에 소·중공간의 전쟁을 예방함으로써 극동의 안전을 도모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열전의 불씨가 되어 있는 한반도의 긴장을 군사적인 것으로부터 정치적 대화에로 전환시켜 강대국들이 휘말려들게 될 위험을 제거해야 한다는 요청이 일어나게 된다.
이를 위해선 한국에서의 「유엔」의 위치를 변경시켜야 한다는 것이 1차적인 문제가 된다. 즉 「유엔」은 한국에 있어서 전쟁 당사자이기 때문에 평화적인 교섭을 위한 어떤 중개자적인 입장에 있지 않다. 이 점에 유의하여 미국의 정책입안자들이나 유력한 학자들이 수삼년 이내 한국의 긴장 완화를 위해선 어떤 형식이로든지 한반도에서의 「유엔」의 철수와 같은 정책을 논해온 바가 있었는데, 이것이 이번에 본격화한 것이다.
이와 아울러 중공의 「유엔」가입이 거의 확실시되는데 그러한 때 중공 가입에 따라 「유엔」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 분단 국가의 동시 가입 문제가 필히 본격적으로 대두되리라는 것이 예상된다. 「로저즈」소장의 발언은 이것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여하간, 작금의 극동 정세는 숨가쁜 변화를 보이고 있다. 우리에게 관한 한 이러한 일련의 변화는 점차 선택의 폭을 좁혀 주는 결과를 보이고 있다.
이 점을 감안하여 우리 정부가 해야할 일은 하루 빨리 본격적인 외교 정책을 재 입안하여 나가야 할 것은 재론을 요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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