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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화」에의 험로…하반기 경제 (6)|물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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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환율 인상 조치 후 물가가 일제히 들먹이고 있다. 주요 공산품 「메이커」들은 수입 원자재 값이 오르게 됐기 때문에, 또 외자 기업체들은 차관 원리금 상환 부담이 그만큼 무거워졌으니까 제품 값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이러한 주요 공산품 가격의 상승 움직임은「택시」·전력 등 다른 요금에까지 번져 결국 거의 모든 물가를 들먹이게 하고 있다.
물가가 어떤 상승 요인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문제는 반응의 정도가 지나치게 민감하고 광범위하며 동시에 이러한 상승 요인이 지나칠 정도로 빈번히 발생한다는 점에 있다.
정부는 이번 환율 인상이 그간의 물가 상승 때문에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설명하고 있으나, 한편 그것이 또 다른 물가 상승의 요인으로 부각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으며 그런 점에서 작금의 물가 동향은 지금까지 제반 상승 요인과의 악순환 속에서 연쇄적으로 상승을 거듭해 온 우리 나라 물가 「패턴」의 일면에 불과할 따름이다.
따라서 물가 문제에 관한 한 상승 요인을 제거 내지 축소, 완화하는 것만이 해결의 첩경이다.
지금까지 정부는 상승 요인을 잠재시켜 놓은 채, 그리고 때로는 상승 요인을 스스로 조성하면서 행정력으로 인위적인 안정을 도모해 왔으며 때문에 물가 상승 압력은 늘 잠재해 있어 가장 어려운 숙제로 남겨져 있는 것이다.
물가가 오르지 않으면 안되게 하는 요인은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우선 최근에는 환율 상승을 들어야 하겠고 다음에는 고금리 체계를 지적할 수 있으며 조세 정책면에서도 하락 효과보다는 상승 효과가 언제나 우위에 서 있다. 여러 차례에 걸친 물품 세율 인상 조정과 수입 억제 효과보다 재정 관세로서의 세수 효과가 더욱 강조되기에 이른 특관 세제의 존속 등이 그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생산과 직결되지 않는 통화의 남발과 물자 수급의 불균형, 그리고 계속되는 임금 상승 또한 물가 상승 요인으로 지적돼야 하며 과잉 투자가 빚어낸 외자 기업의 부실화를 구제하기 위해 정부가 육성 시책이라는 이름으로 제품 값의 상향 조정을 허용해 주는 처사도 문제가 돼야 한다. PVC의 경우가 좋은 예다.
물가 문제의 책임은 「메이커」와 소비자 쪽에도 있다.
우선 「메이커」쪽을 보면 취약한 자본 구조와 원가 상승 요인을 항상 제품 값 인상으로 귀착시키려는 왜곡된 경영 자세가 시정돼야 할 것이다.
대부분의 기업이 외채 아니면 엄청난 공·사채에 의존하여 막대한 금리 부담에 허덕이고 있는 상황하에서는 물가 안정을 기대하기 어려우며 또 경쟁을 통하거나 스스로의 경영 합리화에 의하든지 간에 원가를 절하해 보려는 노력이 보편화하지 않고는 정부가 제아무리 강경한 대책을 써도 물가 상승을 막기는 어려울 것이다.
정부는 가격 인상을 요구하는 「메이커」들을 상대로 간혹 원가 계산서 제출을 요구하곤 한다. 이 계산서를 검토해 보면 거의 예외 없이 엄청난 금리가 원가의 많은 몫으로 계산돼있으며 이 밖에도 요소 비용에 들지 않는 여러 가지 비용이 가산돼있다.
그 정확성 여부는 아무도 모른다. 오직 기업만이 알고 있을 뿐이며 정부는 이를 토대로 가격 인상을 허용해줄 뿐이다.
소비자 측에서는 건전치 못한 소비 「패턴」이 문제가 된다. 생산자의 횡포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고 보호하는 힘이 결여돼 있는 것은 말할 것 없고 분에 넘치는 낭비 풍조로 물가 상승을 오히려 부채질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밖에 유통 「사이드」의 문젯점도 간과할 수 없다. 복잡하고 전근대적인 유통 체계는 필요 이상의 부담을 소비자에게 전가시키고 있으며 때로는 「메이커」에 앞서 물가 상승을 선도하는 현상까지 빚어내고 있다.
이상과 같은 갖가지 요인이 얽혀 있는 가운데 물가는 69년에 잠시 그 상승「템포」가 고개를 숙였었을 뿐 지난해에는 정부의 강력한 억제책에도 불구하고 9·1% (도매)가 상승, 2차 5개년 계획 기간 중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한편 올해에는 상반기 6개월 동안에 벌써 4·7%가 상승, 최근의 환율 인상 조치 때문에 지극히 어두워진 하반기 물가 전망에 미루어 전체적으로 지난해 수준을 훨씬 상회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으며 이는 3차 5개년 계획 앞에 가로놓인 문젯점 중 가장 큰 문제로 지목되고 있다.
정부는 물가 안정에 동원해온 행정력의 한계와 불합리성을 들어 공정 거래법을 제정할 방침을 세우고 있다. 미·일 등 선진 제국의 독점 금지법과 이름이 다를 뿐 추구하는바 목적은 같다고 할 수 있는 이 공정 거래법이 과연 물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는지는 선진 여러 나라의 실례에 비추어 지극히 의문시된다. <변도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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