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3대 상업은행 뱅크원 신구 수석부행장 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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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외국 투자자들이 한국 증시에서 팔고 있는 기본 원인은 한국의 모든 조건을 악재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핵 문제, 이라크 사태, 고유가 등 외부적 조건은 물론 한국의 내부 여건까지 나쁘다. 한국은 작은 위기(minor crisis)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

미국 3대 상업은행인 뱅크원의 투자를 책임지고 있는 신구(44.사진)수석부행장은 한국 증시의 외국인 매도 현상을 가볍게 보지 말라고 충고했다.

신구 부행장은 특히 "뱅크원 등 외국 금융기관들은 모두 최소한 6개월 뒤를 내다보고 투자를 하는데 적절한 정부대책이 나오지 않아 한국 경제에 대한 신뢰감이 떨어지고 있다"며 "한국 정부의 신속한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외국인들이 매수세 감소는 일시적 현상 아닌가.

"그렇게만 볼 문제가 아니다. 외국인 순매수.순매도만으로는 외국투자자의 동향을 정확히 읽지 못한다. 그런 통계에는 모호한 부분이 많다. 전체 시장의 30%로 추정되는 헤지펀드의 움직임도 정확히 반영되지 않고 있을 것이다. '셀 코리아'분위기가 실제로 한국 투자를 지휘하고 있는 대형 펀드의 책임자들로부터 확인된다는 것이 우려스럽다.

-한국 시장 이탈의 원인은 무엇인가.

"내.외부 조건이 모두 나쁘다. 북한 핵은 악재로 작용하지만 셀 코리아 분위기를 직접적으로 촉발한 것은 아니다. 이라크 사태, 고유가 등 외부적 악재는 한국의 경쟁국들도 겪고 있다. 시장 상황이 더 나쁜 것은 한국내 여건 때문이다. 외국 기관들은 한국 경제가 이미 스태그플레이션에 접어들었다고 판단하고 있다. 외국인들은 그동안 부양책을 기다렸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단기 부양책은 없다는 말만 반복하면서 5개월을 허송세월했다. 2개월 무역적자에서 보여지듯 수출로 경기를 계속 유지해 나가는 것은 힘든 상황 아닌가."

-한국 정부는 기업과 금융의 투명성을 강화하고, 기업 규제를 풀기로 하는 등의 정책을 내놓고 있다.

"지난 5개월 동안 한국 경제가 침체 양상을 보여올 때 이자율 인하 등 금융정책이 나왔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유가 상승 등으로 물가가 오르면서 금융정책의 입지가 크게 좁아졌다. 가계 부채가 태국.말레이시아.대만.싱가포르 등 경쟁국들에 비해 훨씬 많은 것이 은행.카드사에 부담을 주기 시작했다. SK에 대한 수사 등 기업구조조정에 관한 조치도 시기가 좋지 않다. 잘못된 관행을 시정하는 작업은 외국투자자들도 환영하지만 시장이 좋은 상황에서 진행됐으면 충격이 훨씬 덜했을 것이다. "

-정말 한국이 위기인가.

"1997년엔 엄청난 기업부채로 말 그대로 위기(major crisis)였지만 현재 기업부채는 양호하고 문제는 가계부채이기 때문에 작은 위기라는 것이다. 97년 같은 엄청난 위기는 아니다. 그러나 외국인들의 이탈 현상이 통계에서 제대로 잡히고 있지 않는 등 양상은 그때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 "

◇신구 부행장=뱅크원은 현재 전 세계에서 1천6백50억달러의 투자펀드를 운용하고 있으며, 신구 부행장은 펀드의 최고책임자다. 미국의 안보정책 싱크탱크인 랜드연구소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뉴욕시 정부 경제정책 자문을 맡은 뒤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와튼 비즈니스 스쿨 아시아담당 책임자로 아시아 경제를 강의했다. 현재 경제전문 뉴스 통신사인 블룸버그에 고정 출연하고 있으며, 구조조정에 대한 다케나카 헤이조 일본 대장상의 자문에 응하고 있다.

시카고 지사=이재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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