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세상 읽기] "조금 불편할 뿐" … 시각장애 고3 수능 열공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3면

[대전광역시 맹학교, 2013. 10]

“첫째 날은 친절과 겸손, 우정으로 내 삶을 가치 있게 해준 사람들을 볼 겁니다. 둘째 날엔 밤이 낮으로 바뀌는 기적을 보고 싶습니다. 마지막 날엔 출근길 사람들을 보고 싶습니다.” 헬렌 켈러(1880년 6월 27일~1968년 6월 1일)가 53세에 발표한 에세이 ‘사흘만 볼 수 있다면(Three days to see)’에 쓴 글입니다. 그녀는 생후 19개월 만에 뇌척수막염을 앓은 후 시각·청각 중복 장애인이 됐습니다. 헬렌 켈러가 위대한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스승 애니 설리번의 “시작하고 실패하는 것을 계속하라”는 가르침을 끊임없이 실천했기 때문일 겁니다.

사진 속 사람들은 오는 11월 7일 치러지는 ‘201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준비를 하고 있는 대전맹학교 고교과정 3학년에 재학 중인 시각장애 학생 배경준(19·왼쪽)군과 신보미(19)양입니다. 두 학생은 장비가 없으면 글을 제대로 볼 수 없는 저시력 2급 학생입니다. 지난 23일 늦은 밤 두 학생은 모의고사 문제를 풀고 있었습니다. 보미양은 탁상용 독서확대기를 이용하고 있었고, 경준군은 두 글자만으로도 컴퓨터 화면이 가득 차는 큰 글자를 보며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가까이 있는 큰 사물 정도만 흐릿하게 보이는 저시력입니다. 사실 조금은 불편해요. 그러나 집중력만큼은 그 누구보다 자신 있습니다. 그래서 책 보는 게 항상 재미있고 좋습니다.” 경준군의 말입니다.

보미양은 “그저 시력이 좋지 못해 조금 불편할 뿐이지, 아예 그 사람의 마음까지 모르는 건 절대 아니니 편견은 버려주세요. 항상 마음까지 보기 위해 몇 배 더 노력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대학에 진학해 앞 못 보는 동료 시각장애인들의 길잡이로 평생 헌신하고 싶다는 보미양과 경준군. 이들의 바람이 헬렌 켈러를 넘는 ‘위대함’으로 실현되길 바랍니다. >> 동영상은 joongang.co.kr

글·사진=프리랜서 김성태

◆장애인 수험생=올해 수능 응시자는 지난해 66만8522명보다 1만7770명 줄어든 65만752명입니다. 이 중 장애인은 850여 명입니다. 장애유형별로는 청각장애 수험생이 266명으로 가장 많고 시각장애인(저시력 포함) 158명, 뇌병변장애인 122명, 지체부자유(지체장애) 93명 순입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