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질서 드러난 "수산행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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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지난달 31일 북양에서 소련경비정에 납치된 제55동성호는 무허가 원양어선어며 무전시설·항해기기 등이 원양어업에 적합하지 않은 선박일 뿐 아니라 출어 당시 부산항에 제출한 출항신고에는 제주도근해에 저서어족 어획을 한다고 했으며 선원들도 반 이상이 당국에 신고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져 수산행정의 무질서를 드러내고 있다.
제55동성호는 지난달18일 부산지방 해운국에 『제주근해의 저서어족 어획차 출어한다』고 출항신고를 해놓고 3일 뒤인 21일에 부산항을 출항, 제56동성호 (92t)와 함께 북양으로 직행, 북위42도·동경160도 캄차카 반도 남단에서 명태잡이 하다가 납치된 것으로 밝혀졌다.
피랍 후 수사기관에서 조사한 결과 해운국에 신고한 승선자 명단도 엉터리로 밝혀져 해운국이 애써 체크하는 입·출항 관리사무조차 무의미했음이 드러났다.
부산지방 해운국에 제출한 출항계에 따르면 선장 문종하씨 등 선원 12명이 승선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수사기관이 밝혀낸 선원명단에는 선장 문씨와 갑판장 안안홍씨 (37) 등 6명만이 제대로 되고 기관장 배용희씨 (30) 등 6명은 선원수첩만 해운국에 고립시켜둔 채 배에 승선하지 않았고 나머지 3명은 뒤바뀐6명과 함께 처음부터 해운국에 신고도 없이 출어했다는 것이다.
선원자격도 문씨만 있을 뿐이었으며, 원양항해의 생명선이라고 불리는 통신기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해 그 동안 제동 수산소속의 301지남호 (4백t)에 소형 무전기로 연락, 본국과 무전연락을 하는 등 처음부터 무모한 출어를 강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불법·무모한 북양 출어는 지난 2월 캄차카 반도 근해에서 조업 중 불탄 부산 화영수산소속 제301화영호 (3백50t·선주 이화석) 등 수십 척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번 제55동성호 사건은 수산청당국이 출어선들의 조업구역조차 파악하지 못할 정도의 행정무능과 이들 어선들이 어획해 온 어획물이 합법적으로 어판돼 온 사실과 해운국은 고질화된 출항계 허위신고를 체크하지 못하고 남영호사건 때와 같이 송선자가 바뀌어도 모르는 해운행정을 되풀이해 왔다는 것 등 복합적 요소가 얽혀 빚어진 사고로 볼 수밖에 없겠다. <부산=김영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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