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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민법개정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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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적어도 법적으로는 손색없는 남녀평등을 누리고있다고 대부분의 여성들은 생각하고 있다. 국민학교 때 이미 『모든 국민은 성별에 의해 차별 받지 아니한다』는 대한민국헌법9조를 배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단 어떤 문제에 부딪쳐 법에 의지하게 된 여성들은 헌법정신에 위배되는 수많은 법 조항에 의해 차가운 차별대우를 받고 좌절감을 갖게된다. 이혼·재산상속·자녀에 대한 친권행사 등이 남녀차별을 경험하는 것이다.
『8대 국회에서는 당연히 이런 법 조항들을 추방해야 한다』고 변호사 이태영 여사는 주장한다. 우리 나라 최초의 여류 변호사인 그는 54년 3대 국회가 간통에 대한 여성일방의 처벌조항을 쌍벌주의로 개정할 때, 그리고 60년 5대 국회가 부부별산제 등을 인정하는 민법개정을 의결할 때 의사당을 향해 압력을 가하는 대 여성운동을 진두지휘 했었다.
『3대 국회가 형법 2백41조로 간통 쌍벌주의를 의결할 무렵 봉건사상에 젖은 대부분의 남성의원들은 축첩이 왜 죄인가를 선명하게 깨닫지 못했어요. 그 안은 논란을 거듭했고, 여성 데모대가 의사당을 둘러싸고 아우성을 치는 속에서 1표 차로 아슬아슬하게 가결되었죠.』
54년의 법개정으로 용기를 얻은 여성단체들은 남아있는 남녀차별법 추방을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60년에 개정된 민법은 부부별산제인정, 처의 무능력제도폐지, 모계혈통의 여인주제인정, 유산상속의 참가, 양녀와 양친이 될 수 있는 권리인정 등으로 여성에 대한 많은 금지조항을 풀어주었다.
『그로부터 꼭 10년이 지났습니다. 적어도 가까운 일본수준으로는 법개정을 이루어야지요. 한 예를 들면 일본에서는 아내의 내조와 가사를 축재에 대한 공로로 인정, 만일 이혼할 경우 위자료와는 별도로 재산분배권을 인정하고 있죠.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는 부부분업에 동일한 가치를 주지 않으므로 부부별산제가 실제로는 의미가 없어요.』
이태영씨는 8대 국회에서 개정되어야할 법조문으로 다음 두 가지를 지적하고 있다. 첫째 유산상속에서 딸과 처는 아들의 2분의1, 장남의 3분의1로 하고 출가한 딸은 아들의 4분의1, 장남의 6분의1로 한 것은 미망인이 차지하는 위치를 생각할 때 마땅히 고쳐야한다. 둘째 이혼한 어머니가 자녀에 대해 아무런 친권행사를 할 수 없게 한 것은 잘못이며 부가 처의 동의 없이 서자를 입적시킬 수 있도록 한 것은 일부일처주의를 측면으로 부정하는 조항이다. 그 이외에 미분명한 재산에 대한 부의 재산추정권 같은 것도 일본처럼 부부공유로 해야될 것이라고 이 여사는 주장한다.
『50년대에 모든 여성단체들은 남녀평등을 위한 법개정을 행동목표로 했고, 60년대에는 소비경제를 주로 다루었어요. 70년대에는 사회복지와 가정의 행복을 위해 사회운동을 일으켜야 하리라고 생각하는데 법이 남녀를 차별하는 곳에 건전한 행복이 있을리 없죠.』
그 자신이 유력한 전국구후보로 물망에 올랐었던 이태영씨는 국회의원이 된 4명의 여성들에게 『당을 초월한 여성으로서의 소명의식을 갖도록』당부하고 싶다면서 자신은 광범위한 사회운동에 힘을 기울여 원내활동을 돕겠다고 약속한다.
1956년 여성법률상담소(현 가정법률상담소)를 개설, 무지와 불운에 우는 수많은 여성들을 상대해온 이태영씨는 『법이란 최후의 보루이며 무엇보다 법정신은 만인에게 평등해야한다는 것을 시시때때로 느낀다』고 말한다. <장명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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