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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PP 가입으로 한국이 얻을 수 있는 것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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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일러스트=강일구]

빅터 차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

이달 초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렸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대해 긍정적인 발언을 했다. 현재 가장 의욕적인 다자간 자유무역협정인 TPP는 호주·브루나이·칠레·캐나다·일본·말레이시아·멕시코·뉴질랜드·페루·싱가포르·미국과 베트남이 참여하고 있다. 한국은 공식 가입하지는 않았지만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서울 측의 관심에 관한 공식 발표는 자제했다. 이 협정의 주역인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워싱턴의 정치적 교착상태 때문에 회의에 불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울은 2013년 말 창설 회원국의 하나로 가입하거나 2014년 협정 완성 단계(말하자면 창설 직후 단계)에서 첫 신규 회원국으로 가입할 것으로 보인다.

 회의주의자들은 이미 미국·유럽연합(EU) 같은 거대 경제권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한국이 TPP 가입으로 어떤 이득을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을 가질 것이다. 한국에 가장 중요한 시장은 중국이며, TPP가 (견제하려고) 가장 염두에 두는 나라가 바로 중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은 TPP 가입으로 실질적인 이익을 얻을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이득은 일본과 관련이 있다. 한국과 일본의 FTA 협상은 수년 동안 아무런 진전 없이 답보 상태였다. 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장애물의 하나가 일본이 한국 상품으로부터 자국을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관세 장벽을 제거하기를 꺼린다는 점이다. 서울은 일본이 지난여름 TPP 협상에 참여해 비관세 장벽 등을 논의하고 나서야 비로소 여기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한국이 TPP협정에 성공적으로 가입하면 일본 시장에 접근할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의 TPP 참여에 가장 중요한 장애는 중국과 국내의 정치적 반응이었다. 중국과 관련해 한국 정부와 전문가 집단은 처음엔 TPP와 한·중 FTA를 제로섬 관점에서 봤다.

실제로 한·미FTA 체결 1주년 때 과거 이 협정의 협상가로 참가했던 분에게 TPP에 대한 한국의 관심을 물어보자 대답 대신 ‘한·중 FTA’라는 말이 돌아왔다. 하지만 한국의 TPP 참여는 한국이 중국과 협상하는 데 방해가 되기보다 잠재적인 지렛대로 역할을 할 수 있다. 특히 한국이 곧 들어가게 될 2차 협상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이는 초기에 결론을 냈던 일반적인 부분보다 훨씬 어려운 영역이다.

 한국 국내에선 발효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던 한·미 FTA와 다른 몇몇 FTA와 관련한 ‘FTA 피로증’이 어느 정도 남아 있다. 하지만 국내 법규와 정책을 기술적으로 TPP 요구사항과 맞추는 일은 한국에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기본 원칙의 경우 조항의 상당 부분은 한·미 FTA 협정문에 이미 있어 한국에 익숙할 것이다. 한·미 FTA가 TPP의 기본 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한·미 FTA 협상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한국은 29장으로 이루어진 기본 합의안에 ‘5분 내에’ 서명할 수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시장 접근과 관련해 TPP는 한국이 비관세 장벽들을 없애기 위해 일본에 압력을 넣는 하나의 근거가 될 수 있다. 이를 통해 TPP는 한국의 일본 시장 접근을 위한 촉매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다음으로 복잡한 문제는 한국의 참가 시기다. 한국은 가입과 관련한 소통 오류에 대한 염려 때문에 관료들이 발표를 미룰 수도 있다. 한국인들은 TPP가 한·미 FTA나 한·EU FTA와 상당 부분 중복된다고 믿기 때문에 창설 단계에서 TPP에 참가하는 마지막 나라가 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의 당국자들은 올해 연말까지 협상을 마무리하길 바란다.

 하지만 일이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다. 새로운 회원국의 가입에 평균 9개월이 걸렸다. 한국의 가입 문제는 2013년 연말을 넘겨야 기본 합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TPP 협상은 2013년에 끝나지 않고 다음 해로 연장될 수 있기 때문에 한국이 창립 회원국으로 가입할 기회는 여전히 있다. 하지만 가능성이 큰 시나리오는 TPP 창설 직후 단계에서 시범 케이스의 하나로 한국이 무사히 첫 신규 회원국으로 가입하는 것이다.

 한국이 가입을 하려고 하는데 왜 시기가 늦춰진 것일까.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과 TPP 가입의 장점을 서로 비교하는 서울에서의 오랜 내부 논쟁이 이유의 하나다. 또 다른 이유는 박근혜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하면서 이전까지 외교통상부가 갖고 있던 교역 관련 업무를 산업통상자원부로 이관한 것이다. 1998년부터 통상업무를 맡았던 이전 조직은 통상정책에서 전략적이고, 경험이 풍부하며 박식한 태도로 잘 알려져 있었다. 이전과 비교하자면 더욱 기능적이고, 분야가 집중된 현재의 부서가 협상 권한을 쥐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늦더라도 가입을 해야 한다고 서울을 잘 설득해야 한다. 워싱턴과 서울은 한국이 창설 직후 단계에 수월하게 TPP에 가입할 수 있도록 이번 가을 중 자문기구를 출범시켜야 할 것이다. TPP 회원국이 되더라도 한국은 중국과의 FTA 협상을 할 수 있다.

한국의 산업부는 지난 6월 발표한 신통상정책 로드맵에서 한·중 FTA와 TPP의 연결고리 역할을 함으로써 한국이 지역 경제통합의 핵심 축으로 위상을 강화해야 한다는 전략을 내놓았다. 이는 아시아의 통상구도 설계에서 박 대통령의 궁극적인 업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빅터 차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