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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을 털며|5·25 주전 멤버 김종필·김대중씨의 권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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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양차 선거의 막이 내렸다. 선거 기간 중 2백여 회 이상의 유세를 벌여 공화·신민 양당의 주전「멤버」이기도 했던 김종필 부총재와 김대중전대통령후보는 전진을 털고 앞으로 할 일의 구상을 다듬고 있다. 두 사람의 선거평가와 설계를 통해 정국의 파장을 가늠해 본다. <김종필>유설 중에 본 민의 음미|"중진신승은 관록정치인 환영 않는 증거냐" 반문|시골로 훌쩍 떠나면서『세상에서 잊혀지고싶다』고|정신개조의 청풍 운동 제창
두 선거를 앞장서 치르고도 선거얘기를 꺼내려들지 않는 김종필씨.『세상에서 잊혀지고싶다』는 것이고, 그래서 그는 28일 시골로 떠났다. 행선지도「비」인데, 아마 농장인 듯.
그러나 김종필씨는『이번 양차 선거를 통해 국민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를 알았다』고 그 나름대로 민의를 음미하고 있다. 선거를 끝내고 내놓은 그의「청풍 운동」같은 것은 바로 이런 음미에 바탕을 두고 발상 된 것 같다.
『밝은 정치풍토와 명랑한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새로 구성되는 국회에서 정치인들부터 청신한 기풍을 진작시켜야 한다』고「청풍 운동」을 제창했으며『부정과 부패를 없애기 위해서는 우선 국민과 정치인 모두가 자기분수를 알고 분수를 지키는 다듬기 운동을 벌여야한다』고 정신개조를 말했다.
선거 유세에서 김 부총재는『부정부패를 몰아내기 위해서는 부패한 정치인을 뽑지 말아야 된다』『권모술수가 정치의 정도가 아니다』『뒤에서 돈 거래나 하는 정치인은 도태되어야한다』는 등 강경한 표현을 썼다.
선거를 통해 느꼈을성싶은 민의가 이런 강경 발언을 낳았고「청풍 운동」은 그 발전인 것 같다.
김 부총재는 여당이 기대이하로 고전한 거나 야당이 예상 밖으로 진출하게된 배경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논평하러들지 않았다.
『너무 많이 되어도 균형이 깨어져 바람직스럽지 못하다』면서도『1백20석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는 아쉬움뿐이다.『경남지역에서 5석만 더 얻어냈어도 원내활동에 훨씬 큰 안전판을 마련해 주었을 것』이라는 것.
당내일부에서는 경남 북에서의 저조가 공천 후유 파동, 당의 지나친 과열 억제 때문이라고 보는 이들이 있지만 김 부총재는 이 문제에 대해서도 입을 다물었다고『당 중진들이 아슬아슬한 표 차로 당선권에 들어선 것은 국민들이 관록정치인을 환영만은 하고있지 않다는 증거냐』고 오히려 반문했다.
그의 비판은 야당의 참 정치인들에게 가해졌다.『야당이라고 해서 옥석이 혼동된 채 대도시에서 크게 진출한 반면 공화당은 중형도시에서도 유능한 후보자가 많이 낙선했다』고했다.
김 부총재는 공화당당선자가운데 10여명의 신인이 퍽 잘 골라졌다면서 성장주로 기대를 걸었다.
그가 정치는 8대 국회는 반드시 밝지만은 않을 듯하다.『대통령 임기의 시한성 때문에 동요가 예상된다』고 말한 적이 있으며『그렇기 때문에 동요를 억제하고 8대국회의 의지를 살려나가는 것이 긴요하다』고했다.
야당의석이 늘어나 국회운영이 마비될 가능성에대해 그는『야당의 국회 단독 소집 권도 갖게되었고 1년 내내 국회를 열어놓고 대여공세를 춰할 가능성이 많다』면서『공화당이 이를 막아내기 위해서는 불필요한의원들의 해외여행도 억제하고 국회운영에 매달려야할 것』이라고.
그의 욕심은『여당의원이 한 상임위에 두 사람정도 많도록 13명 가량만 더 당선이 되었더라면…』하는 것이 있다.
당내에서 거론되고있는 선거제도개혁문제에는 별로 열을 올리지 않는 것 같다.『여자들이 술에 만취하여 길거리에 쓰러져있는 모습도 보았지만 법이 나빠서 보다는 국민의 의식수준이나 정치수준이 낮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런 선거의 타락상은 첫째로 정치인이, 둘째로 국민스스로가 책임져야할 문제』라는 것이다. 단 한가지 대중유세는 하는 사람이나 동원되는 사람의 곤역을 생각해서「텔리비젼」등「매스컴」을 이용하는 선거운동으로 바뀌어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JP」의 위치는 늘 주목을 받아왔다. 이번 선거유세를 통해 주가가 재확인 된 그는 앞으로 어떤 위치에 서게 될지 더욱 주목을 받는다.
형식상으로는 당내 제2인자인 부총재이며 원내에도 전국구1번으로 들어가지만 실질적인 위치는 미지수-. 그 나름대로의 구상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알 길이 없다.
국회에서는 분위기가 조용한 외무위에 소속하고 싶다는 것이며『유세요원이란 직업을 잃었으니 의원직이나 갖고 있겠다』고 담담하다.
그가 국회로 되돌아오는 것은 68년5월30일 정계 은퇴 때로부터 거슬러 올라가면 3년1개월 만이다. 그러면서도 복귀의 변은 없다. <심상기 시자>

<김대중>당 단일 지도체제 강조|당권도전에서 당선자들의 과반수지지 얻는데 낙관|"야당은 부정적 태도에서 긍정적 잠재 집권당 돼야"|당의 질적 발전 시급한 과제
『이번 5·25선거 결과는 정치인들 보다 국민의 정치의식이 훨씬 앞섰다는 걸 증명했다. 민주주의를 위한 준엄한 채찍질에 여야당이 모두 무거운 책임을 느끼고. 새로운 자세를 가다듬을 때라고 본다 』 신민당대통령후보였던 김대중씨는 입원중인「세브란스」병원별관5백55호실에서 이번 양차 선거의 의미를 설명했다. 60여일의 두 차례 선거에서 2백여 회의 유세를 한 김씨는 귀경 길의 교통사고도 입은 상처를 치료하면서 특히『신민당의 짐이 무거워졌다』고했다.
『국회의원선거의 양상은 대통령선거의 연장이었다. 위기에 빠진 민주정치를 구해야겠다는 국민의 현명한 판단으로 호헌 선을 넘는 의석을 확보했으며, 이런 대임을 충실히 해 낼 수 있도록 신민당이 모든 태세를 갖추어야 한다고 』 김씨는 신민당이 앞으로 해야 할 일들에 촛점을 맞추었다.
『이제 신민당은 국회에서 3분의1이상의 세력을 확보했으므로 단순한 견제력의 정당에서 국회기능을 조정하는 의회정당으로 그 체질을 개선 발전시켜야 한다. 어느 의미에선 부정적 태도의 야당에서 긍정적인「잠재 집권당」으로 바꿔가야 한다는 것이지‥.
더구나 정책의 입안이나 집행에 있어서 집권당에만 맡기지 않고, 반대만이 아닌 참여를 통해 상당부분의 책임도 져야 한다는 위치에 서게 됐다.』그는 이것을 한국야당의 차원이 달라지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세금문제·쌀값 등 국민의 생활권을 지키는 것이 야당의 새로운 과제로 등장했으며 이것은「대안 있는 대여투쟁」을 통해 야당이 능률의 민주정치를 지향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 야당의 새 자세와 사명을 규정한 김씨는 신민당의「질적 발전」을 당면과제로 제시했고 이것은『민주주의절차로 파벌의 병폐를 극복하고 조속히 당의 근대화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번 선거에서 신민당은 근대화한 군대에 대항한 죽창부대와도 같았다.
막판에 파벌성의 홍역으로 전열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었다. 이대로는 국민이 안겨준 짐을 감당키 어려우며 조속히 전당대회를 열어 능률적 체제를 갖추어야 한다.』 그는 한마디로『체제개편은 단일지도체제여야 한다』고 못박는다.『일부에서 집단지도체제를 내세우는 모양인데, 그것은 파벌대립을 심화시키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계파간의 견제로 겉으로는 조용하지만, 당 기능은 비능률적이고 생산적이 못된다.』 전당대회서의 지도체제개편으로 일어날 파문에 대해 그는『민주적 대결에 의한 잡음은 국민의 지탄이 되지 않을 것이다. 민주절차에 따라 공정하게 지도층개편에 판가름이 나고 거기에 순종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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