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39)|현장 취재…70만 교포 성공과 실패의 자취|WHO 동남아 지역 본부의 「닥터·김」|뉴델리=이종호 순회 특파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세계 보건 기구 (WHO)의 동남아 지역 본부가 있는 「뉴델리」 WHO에 가서 「닥터·김」을 찾으니 마침 세계 보건 대학원장 회의가 열려 회의에 참석 중이었다.
약 2시간 반 동안 「로비」에서 기다리니까 머리가 하얗게 희고 체격이 건강한 김용성씨 (44)가 회의를 끝내고 나오며 반갑게 맞아준다.
「닥터·김」은 61년 WHO에 들어가 「자메이카」「가나」「나이지리아」「로디지아」「탄자니어」등의 열대 지방 WHO를 거쳐 68년부터 「뉴델리」에 있는 WHO 동남아 지역본부 「말라리아」 방역 고문으로 일하고 있다.
그가 WHO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61년 5·16 직후. 당시 보사부 방역 과장을 지내다가 사직하고 WHO로 자리를 옮긴지 벌써 10년이 된다고 한다.
보사부룰 사직한 것은 공군 의무감실 감사에서 조그만 「트러블」이 생겼기 때문.
김씨에 따르면 휴전 직후 「유솜」 원조 50여만 「달러」로 보건소 6개소를 호화롭게 세우려는 계획을 바꾸어 작은 규모로 30여개를 짓도록 한 것이 말썽의 발단. 당시 우리의 실정으로는 「스팀」·수세식 변소 등을 갖춘 호화판 보건소보다는 작은 규모로나마 여러 곳에 세우는 것이 시급한 문제여서 취한 조처였는데 계획을 마음대로 변경했다는 추궁을 받는 등 말썽이 생기자 사표를 냈다는 것이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예방 의학 전공)을 졸업한 그는 곧 보사부에 들어가 과장 경력만도 8년이 되지만, 지금 생각하면 WHO로 옮긴 것이 보수도 많고 세계를 상대로 보건 사업을 하고 있는 보람도 느껴 자리를 옮긴 것을 잘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김씨는 말한다.
현재 그의 월봉은 1천8백「달러」(세금 공제하면 1천4백「달러) 처음 WHO에 들어 왔을 때는 월1천「달러」를 받았으나 그 동안 지역 본부 고문으로 승진해서 보수도 많아졌다.
한국은 WHO서 태평양 지역에 속하지만 김 박사가 일하는 동남아 지역 본부는 인도「네팔」「실론」「맬다이브」「버마」 태국 「인도네시아」 몽고 등 8개국을 관장하고 있다.
WHO에서 일을 하자면 처음 1년동안 「테스트」를 거쳐 그후부터 성적에 따라 2년 내지 5년씩 계약을 경신하는데 그는 본부로부터 두터운 인정을 받아 종신 계약을 맺고 있다.
그가 담당하고 있는 「말라리아」박멸 사업은 55년 WHO 「멕시코」총회 때 채택되어 지금까지 30%를 퇴치한 통계를 보이고 있다. 인도의 경우, 52년까지 1년에 1백만명 이상이 「말라리아」로 죽어갔으나 이젠 사망자는 거의 없어졌다고 한다.
현재 그의 업무는 한달에 한번씩 지역 국가를 순방, 「말라리아」방역 사업에 대한 실적·현황·자문 등을 하는 일인데 지역 국가 중 유일한 적성 국가인 몽고는 다행히 「말라리아」가 없어 가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 같은 곳은 2백여개의 언어가 있어 마을마다 말이 다르고 인도 같은 곳은 「캐스트」제도 등으로 방역 사업을 펴 가는 것이 쉽지 않다고 김 박사는 말한다.
그러나 「아프리카」인은 순진한 면이 있어 쉬운 면도 없지 않다고 한다. 가령 「말라리아」무기를 채취하기 위해 일당 만주면 모기장 속에 들어가 밤새도록 모기에 뜯기고 있는 것이 좋은 예라고 지적했다. 지금도 「아프리카」를 생각하면 처음 「아프리카」로 발령을 받았을 때 『미국에서 권총을 사려고까지 마음먹었다가 현지에 가서 그들의 순진성을 보고 얼굴 붉혔던 일은 잊을 수가 없다』고 되새겼다.
김 박사는 2년에 한번씩 WHO가 내주는 여비로 한국을 찾는데 그때마다 교육이나 보건행정상에 소홀한 점을 느껴 불만이라고 했다.
예방 의학은 돈벌이가 적기 때문에 인기가 없으나 인류에 대한 공헌이나 질병 퇴치·치료경비 절약의 첩경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의학도는 사명감을 갖고 의학을 선택해야 하고 정부는 병원 건설보다 보건소 확충에 더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김 박사는 부인 김경옥 (42) 여사와의 사이에 2남2녀를 두고 있다. 장녀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화공학을 전공하고, 차녀는 이곳 「인터내셔널·스쿨」의 고등학교 과정을 마쳐 한국에 보내어 동양화를 전공케 할 계획이며 두 아들은 「뉴넬리」의 영국인 학교에 보내고 있다.
북괴가 「네팔」에 영사관을 설치하고 문화관까지 두고 있으나 우리 나라는 아직 기관을 하나도 두지 않아 걱정이라면서 그곳에서는 『의과 대학의 신설, 보건소의 확장을 꾀하고 한국 민간 사절의 사명감으로 한국 소개에 힘을 기울이겠다』고 김 박사는 의욕에 넘쳐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