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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 시기가 생명 좌우하는 대동맥 질환

중앙일보

입력

일러스트=강일구 ilgoo@joongang.co.kr

운송업을 하는 황진원(38·남·서울 강남구)씨는 가슴이 찢어질 듯한 통증으로 응급실에 실려 왔다. 심장에서 뻗어나와 뇌로 피를 올려주는 상행 대동맥 내부가 찢어진 게 원인이었다. 의사는 고혈압과 고지혈증, 높은 콜레스테롤 때문에 대동맥이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파열됐다고 말했다. 황씨는 본인에게 고혈압이 있는 줄도 몰라 혈압을 전혀 관리하지 않았다. 술과 담배로 스트레스를 풀었던 게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인체에는 쭉 뻗은 고속도로와 같은 혈관이 심장에서 복부까지 이어진다. 우리 몸에서 가장 크고 탄력 있는 혈관인 대동맥이다. 심장에서 뿜어 나와 산소·영양분이 풍부한 혈액을 온몸으로 전달한다. 대동맥이 혈액을 막힘 없이 운반해야 머리에서 발끝까지 피가 잘 돌고, 장기와 세포가 숨을 쉰다. 이런 대동맥이 부풀어 오르고 찢어지면 목숨을 위협하는 초응급질환이 된다. 강남세브란스병원 대동맥클리닉 이기종 교수(흉부외과)는 “대동맥 질환은 기본적으로 혈관이 늙어 발생하는 퇴행성질환이지만 고혈압·동맥경화·흡연·과도한 스트레스도 주요 원인”이라며 “최근에는 노인뿐 아니라 젊은 환자까지 는다”고 말했다. 강남세브란스병원 대동맥클리닉의 도움말로 발병위험이 높아지는 대동맥질환의 위험성과 치료법을 알아본다.

혈관 부푸는 대동맥류 소리없이 진행

대동맥질환은 시한폭탄으로 불린다. 언제 혈관이 터질지 모른다. 혈관이 서서히 부푸는 ‘대동맥류’가 견디다 못해 터지거나 대동맥 안쪽 약한 내벽이 찢어지는 ‘대동맥박리’가 온다. 이광훈 교수(영상의학과)는 “혈관에 정상 이상의 압력을 가하는 고혈압과 함께 콜레스테롤이 혈관 내부에 끼어 점차 굳는 동맥경화가 주원인”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혈관조직을 상하게 하는 흡연과 과도한 스트레스가 상태를 악화시킨다.

가슴과 복부 중간에 위치한 횡격막을 기준으로 위쪽이 흉부대동맥, 아래쪽은 복부대동맥이다. 흉부대동맥에 박리가 생기면 가슴이 찢어지는 통증이 오거나 등·팔 쪽으로 통증이 퍼진다. 호흡이 가빠지고 힘들어진다. 이때 대부분 고통 때문에 응급실을 바로 찾지만 일부 환자들은 참다가 치료시기를 놓친다. 이광훈 교수는 “대동맥 박리를 방치하면 한 시간마다 사망률이 1%씩 높아진다”고 말했다. 복부대동맥박리는 대부분 흉부대동맥박리가 생기면서 연쇄적으로 발생한다.

부풀어오르는 대동맥류는 소리 없이 진행돼 치료시기를 놓치기 쉽다. 주변 신경을 눌러도 대동맥류 때문인지 알아차리기 어렵다. 이광훈 교수는 “흉부대동맥류가 발생해 목소리로 가는 신경을 누르면 목소리가 잘 안 나온다”며 “제대로 진단받지 못하고 병원을 전전하다 시간만 지체한 경우가 있었다”고 말했다. 특히 복부대동맥은 뱃속 깊숙이 있어 자각증상이 거의 없다. 이광훈 교수는 “2㎝인 대동맥 굵기가 두배 이상 늘어나도 잘 모른다”며 “복부대동맥류가 부풀다 파열하면 환자의 80%가 사망한다”고 말했다.

대동맥이 터지면 손쓸 틈도 없이 사망할 수 있다. 예방이 중요한 이유다. 이기종 교수는 “건강검진 시 대동맥을 살펴보고, 혈관질환이 있었던 고위험군 환자는 정밀 검진을 받아보는 게 좋다” 고 말했다.

합병증 줄이는 하이브리드 수술법

대동맥질환은 일단 진단이 되면 혈압을 조절하고 위험요소를 제거해 주기적으로 추적·관찰해야 한다. 병이 진행될 기미가 보이면 빠르게 치료받는다.

부풀고 찢어지는 대동맥질환을 치료하는 최신 수술법은 하이브리드다. 하이브리드 수술은 외과수술과 중재시술(스텐트 크래프트)을 결합시켜 합병증을 낮추고, 치료효과는 높인다. 외과수술은 문제가 되는 혈관을 제거하고, 인조혈관으로 대체한다. 그러나 심장을 정지시켜 인공심폐기를 사용해야 하고, 가슴·복부를 30㎝ 이상 절개한다. 합병증 위험이 크고 흉터가 남는다.

영상장비를 이용해 치료하는 스텐트 크래프트(스프링처럼 생긴 관) 시술을 사용하기도 한다. 1㎝ 이하의 작은 절개창에 스텐트를 삽입해 혈액 통로를 만든다. 외과수술에 비해 위험도가 낮지만 동맥경화가 심하거나 복잡하게 꼬인 혈관은 치료가 어렵다.

외과수술과 중재시술을 결합한 수술법이 하이브리드다. 스텐트를 넣기 힘든 혈관 부위는 수술로 우회로를 만들어주고, 나머지 혈관에 스텐트를 삽입한다. 기존에는 수술이나 스텐트 중 한 가지만 선택해 치료를 했다.

대동맥질환은 돌연사를 부르는 중증 응급질환이다. 진단·치료가 까다로우므로 전문 의료진이 24시간 상주하는 병원을 미리 알아두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이민영 기자
일러스트=강일구 기자

◆ 강남세브란스병원 대동맥클리닉은=흉부외과·영상의학과·마취과가 협진하는 하이브리드 수술에서 우수한 치료성적을 내놓고 있다. 병원이 2012년 6월~2013년 8월까지 대동맥 질환자 163명에게 하이브리드를 시행한 결과, 치료성공률은 98% 이상이었다. 응급환자가 온다는 연락을 받으면 후송 과정에서 환자의 수속절차를 마치고, 병원에 도착하는 즉시 수술받을 수 있도록 한 ‘대동맥질환 신속진료 시스템’을 갖춘 것도 수술성공률을 끌어올린 요인이다. 강남세브란스병원의 우수한 치료성과에 주목한 해외 의료진이 술기를 교육받기 위해 12월 한국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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