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황금주파수 '700㎒'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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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주파수는 공공복리 차원에서 방송용으로 사용해야 한다.”(방송업계), “통신 분야로 활용해야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통신업계)

 최근 방송과 통신업계에서 자주 등장하는 말이 ‘700㎒’다. 이 주파수는 지난해 종료된 아날로그TV와 일부 노래방 무선마이크 등에 사용해 왔다. 특히 이달 지상파 방송이 디지털방송으로 전환하면서 700㎒가 여유대역(108㎒ 폭, 698∼806㎒)으로 온전히 남게 돼 이 주파수를 어디에 활용할 것인가에 대해 관심이 커지고 있다. 700㎒ 대역은 전파가 잘 휘어지고 효율성이 뛰어나다는 점에서 ‘황금 주파수’로 불리고 있다.

 통신업계와 방송업계는 각자 논리를 내세우며 700㎒를 가져야 한다고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 통신업계에선 빠르게 늘어나는 무선 데이터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700㎒ 대역을 통신용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통신사가 이 대역 주파수를 사용하면 보다 빠르게 모바일 데이터를 사용할 수 있고, 단말기·시스템 등이 새로 구축되면서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이 700㎒ 대역을 통신용으로 쓰도록 권고했고, 미국·일본 등에서 통신용으로 할당하는 등 세계적인 트렌드도 통신업계에 손을 들어주는 분위기다. 홍인기 경희대 전자전파공학과 교수는 “통신사의 모바일 트래픽은 최근 2년 새 10배 가까이 증가했다”며 “스마트폰 보급으로 무선데이터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만큼 충분한 주파수가 주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에 방송계는 주파수가 희소한 국가자산인 만큼 공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주파수를 국민 누구나 볼 수 있는 지상파 방송에 배정해 난시청 해소는 물론, 더 선명하고 다양한 방송을 시청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향후 초고화질(UHD) 등 차세대 고품질 방송을 위해서도 700㎒ 주파수 확보가 절실하다. UHD와 같은 차세대 방송 서비스는 기존 방송보다 훨씬 넓은 주파수 폭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최우정 계명대 법경대학 교수는 “시장 논리로 주파수를 매각하는 것은 방송의 발전, 난시청 해소 등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다”며 “최첨단 방송서비스 및 기술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업계뿐 아니라 정부 내에서도 입장이 엇갈린다. 박근혜정부가 들어서면서 주파수 배정권이 분산된 탓이다. 현재 방송용 주파수는 방송통신위원회, 통신용 주파수는 미래창조과학부가 각각 관리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양 부처는 자신이 관할하는 산업 쪽의 입장에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 여기에 안전행정부는 재난망 사업(12㎒폭), 국토교통부는 철도통신망(10㎒폭)에 700㎒를 할당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당초 미래부는 방통위와 공동으로 연구반을 구성해 올해 내로 700㎒ 주파수의 활용 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그러나 방통위가 연내 결정에 부정적인 입장을 갖고 있는 데다, 안행부의 재난망 예비타당성 조사가 늦춰지면서 해를 넘길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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