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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금 14조원 … 금융제국 JP모건 탐욕의 대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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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JP모건체이스 회장이자 최고경영자(CEO) 제이미 다이먼은 지난 9월 25일 미국 뉴욕을 출발해 워싱턴으로 향했다. 에릭 홀더 법무장관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법무부가 조사 중인 JP모건의 주택담보부증권(MBS) 부실 판매 건을 논의하는 게 워싱턴행 목적이었다. 말이 의논이지 그는 피의자 신분이나 마찬가지였다. 다이먼은 “벌금 110억 달러를 내겠다. 대신 불기소 처분을 내려 달라”고 홀더 장관에게 호소했다. 다이먼의 읍소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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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20여 일이 흘렀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은 “JP모건이 벌금 130억 달러(약 14조원)를 내기로 미 법무부와 잠정 합의했다”고 19일(현지시간) 일제히 보도했다. 단일 기업에 부과된 벌금으론 미 역사상 최고 액수다. JP모건이 지난해 번 돈(순수익) 198억7700만 달러 가운데 65%를 고스란히 벌금으로 내게 생겼다.

 벌금은 탐욕의 대가다. JP모건은 주택거품 시기인 2005~2007년 모기지 대출자들의 갚을 능력을 부풀렸다. 그만큼 높아진 값을 받고 국책 주택금융회사인 페니메이와 프레디맥에 문제의 채권을 되팔았다. 하지만 원채무자들은 2007년 이후 모기지를 제대로 갚지 못했다. 페니메이 등은 “부실 판매된 액수가 330억 달러”라고 주장했다.

 이번 건은 다이먼이 시달리고 있는 여러 송사 중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JP모건은 지난해 파생금융상품 투기를 벌이다 62억 달러의 손실을 봤다. 이른바 ‘런던 고래’ 사건이다. 다이먼은 손실 규모를 주주 등에게 축소 보고했다. 이 건으로 JP모건은 10억 달러 가까운 벌금도 금융감독 당국에 내야 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JP모건은 올 3분기에 3억8000만 달러에 이르는 손해를 입었다. 분기별 실적에서 손실이 난 것은 2004년 이후 처음이다. 로이터통신은 애널리스트들의 말을 빌려 “72억 달러에 이르는 소송비용 탓”이라고 전했다.

다이먼은 비상 대책을 강구했다. 뉴욕 금융가의 상징 중 하나인 원체이스맨해튼플라자를 중국 푸싱(復星)그룹에 넘기기로 18일 합의했다. 금액은 7억2500만 달러다. 중국 자본이 뉴욕에서 사들인 건물 가운데 최고가다. 이 건물은 2000년 JP모건과 체이스맨해튼은행의 합병 이후 그룹의 핵심 자산이었다.

 블룸버그통신 등은 월가 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다이먼이 취임 7년 만에 최악의 리더십 위기를 맞았다”고 평가했다. 그는 2006년 미국 최대 투자은행 JP모건의 CEO 자리에 올랐고 숱한 고비를 이겨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한 발 빠른 대처로 회사를 위기에서 구해냈다. 리먼브러더스, 베어스턴스, 메릴린치 등 경쟁사가 쓰러질 때 JP모건은 오히려 몸집을 키울 수 있었다. 덕분에 ‘월가의 대변인’ 구실을 하며 버락 오바마 정부의 규제 강화를 거세게 비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이먼의 성공 이면엔 수많은 불법과 탈법 행위가 똬리를 틀고 있었다. 직접 불법 행위를 지시하진 않았지만 너무 회사가 방대하다 보니 제대로 감시·감독할 수 없었다. 바로 거대 금융그룹 경영자들의 숙명이다. 다이먼에게 ‘금융 황제 수업’을 가르친 샌디 웨일 전 씨티그룹 회장이 같은 이유로 2002년 물러났다. 요즘 다이먼이 스승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조현숙 기자

◆제이미 다이먼(Jamie Dimon)=57세. 그리스계 미국인이다. 하버드 경영대 학원에서 석사를 받았고 씨티그룹, 살로먼스미스바니, 뱅크원 등을 거쳐 은행가로 성장했다. 2006년부터 미국 최대 투자은행인 JP모건체이스의 회장 겸 CEO를 맡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친분이 깊어 재무장관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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