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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포로에서 생환까지의 수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편집자주=다음은 지난 4월7일 크메르 전선취재도중 제4번 공로상에서 공산군에 납치되었다가 23일만에 석방된 upi 프놈펜 지국장 캐더린·웨브양의 생생한 적진체험수기이다.>
【워싱턴UPI동양】우리들 일행 6명은 어둑한 땅거미 속에 서서 우리들의 석방을 지켜보기 위해 따라온 공산군들에 작별의 손을 흔들었다. 『가거든 사실대로 써주시오』하고 그들은 말했다. 『무사히 돌아가기만 한다면』하고 나는 생각했다. 운이 좋았던 것일까. 우리는 마침내 제4번 공노상에서 최초의 총성이 울린지 23일만에 생환할 수 있었다.
4월7일 조용하나 무더운 날이었다. 신통한 사진 한장 못 찍은 나는 UPI운전사 사라트와 함께 제4번 공노를 터벅터벅 걷고 있었다. 땀방울이 아스팔트에 떨어지기가 무섭게 지글지글 끓을 만큼 무더운 날씨였다.
나는 땀을 막기 위해 손수건을 목에 감았으나 땀방울은 눈에도, 두 팔에도, 「카메라」 위에도 뚝뚝 떨어졌다. 하오 1시쯤이었다. 갑자기 콩볶듯한 총성이 터지더니 박격포탄의 작렬음, 자동화기의 불뿜는 소리와 비명이 들려왔다. 나는 얼른 옆의 개울로 뛰어들었다. 내 앞을 가던 크메르군 공수병 하나가 다리를 질질끌 며 개울쪽으로 접근했다. 척하더니 그의 어깨에서도 붉은 피가 번져났다.
『잘못들었어! CP로 돌아가요!』 나는 사라프에게 헐떡이며 말했다. 순간 발목이 뜨끔하면서 나는 피에 미끌어져 자빠졌고 샌들이 벗겨져 달아났다. 사라프가 샌들을 내게 던졌다. 『미스·케이트(캐더린)! 미스·케이트! 안돼요!』그러면서 크메르의 사진기사 한 사람이 내 앞에 나타났다.
『「베트콩」이 굉장히 많아요!』 『무전기 어디 있어? 무전기 있는데로 가요!』 사라트가 외쳤다.
그제서야 우리는 사태를 판단했다.
공산군들은 크메르군 전방CP와 후방CP를 동시에 공격하고 있었고 우리는 바로 그 중간에 갇힌 것이었다.
그러는데 일본 전파뉴스의 스즈끼·도시이찌(41) 기자가 나타났다. 우리들 종군기자들과 비전투원은 크메르 신문 만화가 이앙·차룬(27), 스즈끼기자 역시 사진기자인 히앙(31), UPI운전사 겸 통역 사라트(31), 스즈끼의 운전사 콩·.본(36) 이렇게 모두 6명이었다. 교전은 계속되고 있었고 우리는 프놈펜으로부터 89㎞떨어진 베트콩 지역내의 정글로 별 수 없이 대피했다.
숲 속에서 우리는 의논했다. 포탄과 공습을 피해 동북쭉으로 달리다가 어둡기 전에 다시 공노로 나간다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사라트는 신분증을 땅에 파묻었고 차룬은 크메르군복을 벗어버려 팬츠 차림이 되었다.
우리는 옷을 찢기고 살을 할퀴며 무성한 정글 속을 뛰었다.
갈증이 심했다. 모두 얼굴과 팔의 땀을 핥았다.
포탄이 우리주위에 떨어지고 있었고 베트콩 벙커를 연결하는 전화선에 걸려 우리는 넘어지기도 했다.
갈수록 포격은 심했다. 왔던 길로 도로 돌아가자는 사람도 있었으나 계속 전진하기로 했다.
포격 속을 강행군해서라도 정부군쪽으로 접근하기 위해서였다. 날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약5㎞쯤 뛴 것 같았다. 그러나 아직도 포성과 총성은 멎지 않고 있었다.
어둡자 베트콩들이 떼지어 우리주변에 출몰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몸이 얼어붙은 듯 엎드리고 그들이 통과하기를 기다렸다. 군복으로 보아 월맹군들 같아 보였다.
그들때문에 어둡기 전에 정글을 벗어나기란 결국 불가능한 일이 되고 말았다.
밤이 깊어갔다. 모두 지쳐버려 더 이상 걷지도 못했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우리는 부상한 히앙을 부축해서 베트콩통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갑자기AK-47 자동소총의 총구 두개가 우리 앞에 나타났다. 우리의 두 손이 자동적으로 올라갔다. 나는 시계를 보았다.
11시30분 『바오치, 바으오』(기자, 기자)하고 누군가가 말했다. 『누옥, 누옥』(물)하는 말도 들렸다.
두 명의 월맹군은 우리를 훑어보다가 내게 시선이 멎었다. 『미?(미국인이냐?)』 『영국인이다.』 누군가가 대답했다. 다음은 스즈끼 차례였다. 『재퍼니즈, 닙봉』하고 그가 얼른 대답했다.
월맹군 하나가 남아 우리를 감시하고 하나는 정글 속으로 사라졌다.
얼마 후 그는 물대신 로프를 들고 나타났다. 우리는 붙들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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