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기로에 선 물가정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대통령 선거가 끝나자 물가가 일제히 고개를 들고 있다. 쇠고기와 일부 대중 음식값은 선거 기간 중에 이미 올라 버렸지만 선거가 끝나고 나서 차값·쌀값(일반미)이 뛰었고 면사, 밀가루, 기름, 설탕, 판유리, 소다회, PVC, 승용차 등 주요 공산품 가격이 들먹이고 있다.
저마다 구실은 있겠지만 일부 협정 요금이 4·27을 전후해서 오른 것은 주로 행정당국의 단속 소홀 때문이었다. 때문에 정부는 이의 즉각적인 환원을 요구했으며 불응하는 업소에 대해서는 행정력을 최대한 동원, 강력히 단속할 방침을 세우고있다.
그러나 아직 올리지는 않았지만 조만간 올려야겠다고 주장하고 있는 주요 공산품의 경우는 사정이 좀 다르다.
이들은 선거전부터 따라서 선거와는 전혀 무관한 가격상승요인을 잉태하고 있었으며 단지 선거기간 중에는 가격인상을 절대로 허용치 않겠다는 정부 방침에 눌려 지금까지 참아온 것들이다. 따라서 선거가 끝나자 이들이 들먹이는 것은 선거과정에서 조성된 현상으로서의 이른바 「선거 후유증」이 아니다.
면사를 비롯, 정부 당국까지도 어느 정도의 가격 현실화가 불가피하다고 보는 일부 공산품에서 「메이커」들이 공통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가격 상승요인은 첫째 수입 원료의 국제 시세앙등, 둘째 환율 상승, 세째 노임 상승 등 세가지다.
원유값이 지난해 11월과 금년 2월, 두 차례에 걸쳐 대폭 오른 것은 주지의 일이며 원면은 미국의 흉작 때문에 도입 양이 줄었을 뿐 아니라 가격도 전세계적으로 계속 오름세에 있다.
원당 역시 국제 시세가 많이 올랐으며 소맥은 미국 정부의 외원 정책 전환과 함께 도입사정과 조건 등 모든 면에서 어려워졌다. 이외에 오는 6월1일부터는 앞서의 협정에 따라 원유값이 다시 「배럴」당 10「센트」가량 오르고 이와는 별도로 모든 화물의 국제 해상 운임이 일제히 오르게 돼있다.
한편 환율은 지금 1년전과 비교하여 불당 약120원의 차이가 있으며 연간 1억불이상 혹은 5천만불 내외의 원료를 수입해야 하는 업계로서는 막대한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또 노임 인상은 대기업에서 거의 연례 행사가 돼있으며 옳건 그르건 그것을 제품 값 인상으로 「커버」하는 것이 당연한 순서처럼 돼 있는게 우리 현실이다.
면사, 기름, 밀가루, 설탕 등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마 전기한 세가지 공통적인 요소를 모두 갖고 있는 것들이지만 그 중 어느 한가지나 두가지 또는 그 상품에 특유한 전혀 다른 성격의 인상 이유를 내세우고 있는 물자도 많이 있다.
노임 상승은 모든 물자가 예외 없이 쳐드는 인상요인이며 이밖에 소다회는 소금값 때문에 판유리는 소다회값 때문에 인상이 불가피하고 PVC와「시멘트」등은 업계의 과당 경쟁으로 가격이 협정가를 하회하고 있기 때문에 공판제를 부활 혹은 강화해서 가격을 올려야겠다고 벼르고 있다. 한편 「코티나」를 비롯한 일부 승용차 「메이커」들은 「모델」변경을 구실로 해서 값을 올릴 기세이고, 합판은 목재 수급 사정이 어려워졌기 때문에 가격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말하고 있다.
저마다, 정부당국자들까지도 어느 정도 수긍할만한 인상 이유를 내세우고 있기 때문에 경제기획원의 물가당국은 지금 근래에 겪어 보지 못한 「딜레머」에 빠져 있다.
인상을 허용하자니 물가안정이 여지없이 깨지겠고 그렇다고 해서 무한정 행정력만 가지고 인상을 누를 수도 없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기획원 당국은 지금까지 부분적인 대책을 몇 가지 취한바 있다. 원유와 원면 등의 관세면제조치를 단행했고 비축물자의 방출을 촉진하고 있으며 소다회에 대해서는 곧 3백만불 상당의 외산염을 물자 차관으로 도입 허용할 계획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련의 조치들은 미봉책에 불과하며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가령 원유만 하더라도 가격이 30% 가까이나 올랐으니까 관세 5%를 면제해주는 것만 갖고 기름값 상승요인을 제거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우선 면사, 밀가루, 기름, 설탕 등 일부 물가의 가격 조정 문제를 예의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다만 이달 25일로 예정된 국회의원 선거까지 완전히 치른 뒤에, 즉 6월 이후에 인상을 허용할 것이냐, 아니면 그 이전이라도 몇몇 시급한 것은 인상해줄 것이냐 하는 점에 대해서는 아직 단안을 내리지 못하고 있으며 단지 총선 뒤로 연기할 공산이 짙다는 관측이 유력할 뿐이다.
어째든 올해 하반기 물가 전망은 지극히 어둡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상반기 중에는 도매 물가 상승률을 그럭저럭 3%내의 수준에서 억제할 수 있을 것이지만 하반기 상승률은 그렇게 완만하지 않을 것이다.
조만간 인상을 계획하고 있는 민간 물자 이외에 가을에는 필시 탄가·철도 화물 운임·전기료 등 공공 요금 인상 문제가 대두될 것이 거의 틀림없다. 또 환율은 완만하게나마 계속 상승할 것이다. 실로 물가에 관한 한 난제가 산적해 있으며 어떻게 이를 처리해 나갈는지 자못 궁금한 일이다. <변도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