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여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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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고속버스 안에서의 일이다. 보아하니 재일 교포들인 것 같았다. 일행은 열 명이 좀 넘었다. 차를 탈 때부터 일본말을 왜들 그렇게 큰소리로 말하는지 차안의 승객들이 모두 이맛살을 찌푸렸다. 표를 살 때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일행들이 차내에 뿔뿔이 흩어져 앉게 되어서 그런지 안내양과 관계자에게 일본말과 우리말을 섞어가며 심한 언사를 쓰면서 호통을 친다.
차내의 승객들 모두가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시간이 되어 차는 출발을 했다. 여행 중에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니 우리말도 아주 잘한다. 그 잘하는 우리말을 놔두고 왜 처음 탈 때와 큰소리를 칠 때는 일본말을 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미 지정 좌석에 앉아있는 승객들에게 안내양이 가서 『외국 관광객들의 일행인데 좌석을 좀 바꿔주시겠습니까』 한다. 모두들 꼼짝을 안 한다. 이때다. 『거 좀 바꿔주지 그래』 누군가하고 보니 일행 중에서도 가장 큰소리로 일본말을 하던 바로 그자다.
안내양이 내게로 왔다. 나도 이 나라의 국민으로서 특히 서울은 이 달을 관광의 달로 정하고 있는데 왜 내가 그만한 일로 양보를 안 하겠나, 그러나 그네들의 하는 행동과 언사가 너무나도 불쾌하고 참기가 어려웠다.
자기들이 진정 외국인일까? 이곳은 그들의 조국이 아닌가. 그렇게도 주체의식이 없고 민족의식이 없었나,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과연 그들이 그들의 조국을 위해서 뭘로 이바지할 지는 미지수이겠지만 그와 같은 사상과 사고방식이 있는 한 조국의 명예나 손상시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더 간절하다.
아마 그들이 가는 곳마다 불쾌하게 여길 사람이 한 두 사람이 아닐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어쨌든 간에 오래간 만의 조국이라고 찾아온 그네들이 아닌가. 자리를 양보하고 뒷자리로 앉았다.
그러나 어쩐지 기분은 꺼림직 하다. 오랜만의 여행이 못내 아쉬운 여운만 남겼다.<곽세백(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126∼3 대성직영 제3주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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