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초 유감|문상희(연세대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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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난달 어느 날 하오 우리는 자하문 밖에 사는 친구 집에 모여 앞으로 추진할 연구에 관하여 의견을 교환하였다. 삼각산이 한 폭의 그림처럼 바라보이는 그의 서재에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웠다. 「스위스」에 연구 차 갔다가 돌아온 젊은 교수의 체험담이다.
「스위스」에 간지 얼마 후 어느 날 길가는 사람들이 모두 자기를 쳐다보기에 당황했지만, 아마 동양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거겠지 하고 마음을 달래보았으나 아무래도 그들의 눈치가 다르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곰곰 생각하니까 자기 입의 담배가 그 원인인 것을 발견하였다는 것이다.
「스위스」사람들은 길에서 담배를 피는 일이 없는 것을 그제 서야 알게된 이 젊은 교수는 그때부터는 절대로 대로에서 담배를 피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일은 외국에 다녀본 사람들은 누구나 두루 아는 일이다. 담배를 피는 일에도 절도가 있고 「에티켓」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술을 마시는데 「주도」가 있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이러한 일이 작은 일 같지마는 한 개인이면 그의 인격형성, 한 사회면 그 사회의 성격, 한 나라면 그 국민성을 형성하는 요인이 되는 것이다.
지금은 작고한 어느 시인은 자기의 아호를 「공초」라고 불렀다. 하필이면 공초라고 하였을까, 시인의 일이라 무엇인가 깊은 뜻이 있었을 것만 같다. 그는 인생을 「공초」로 달관하였는지도 모른다. 시의 세계로 승화된 공초는 낭만적인 「뉘앙스」가 있다. 그런데 꽁초 그것은 어디서 보거나 지저분하다. 합승 속에 굴러다니는 꽁초, 대합실에서 발에 채는 꽁초, 길가에 버려진 꽁초, 「빌딩」계단에 던져진 꽁초, 어디서 보거나 꽁초는 불쾌한 것이다. 꽁초가 갈 곳은 재떨이요, 쓰레기통이다. 꽁초가 버려진 곳은 어디나 쓰레기통으로 화하고 만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
우리 나라에서 발생하는 산화의 거의 대부분이 산에 함부로 버린 담배꽁초에서 발생한다는 것도 사실이다. 자기의 담배꽁초는 반드시 남에게 폐가 되지 않게 처리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 나라의 담배가 밖에서 들어온 지도 퍽 오랜 모양인데 아직도 우리의 「연초도」는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생각컨대 우리네 젊은이들이 담배를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숨어서 피기 시작한데서 좋지 못한 습성이 몸에 배제된 것이 아닐까, 술잔 돌리지 않기 운동을 벌인 국회의원이 있다.
수긍 가는 점이 없지 않다. 성사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담배 바로 피우기 운동」을 벌일 용사도 나올 법 한데 아직 없다. 자녀가 성년이 되면 부모들이 담배를 바로 피우게 가르쳐 주어야 하지 않을까. 지저분한 꽁초를 볼 때마다 이런 생각에 잠기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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