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발리에」의 죽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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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지난 14년 동안 「아이티」에서 군림해오던 「뒤발리에」 종신대통령이 결국 21일 죽었다. 아무리 독재자라도 생명만은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는 생전에 독재정치를 해나가는데 있어서의 정석은 모두 썼었다. 그는 자기의 정적을 모두 죽이거나 국외로 추방했다. 그리고 대단 처형장면을 국민학교 어린이들에게까지 강제로 목격케 했었다.
어떤 나라 건 그 국민이 독재정치의 철권 밑에 쉽게 굴복하게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들이 무지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예로부터 사용되는 「민」이라는 한문의 참뜻부터가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어느 한어학자의 말을 빌리면「민」이란 말은 사람을 바늘 끝으로 찍러 장님으로 만든 상태를 나타내며, 따라서 「민」자의 원래의 어원은 맹노예였다는 것이다.
곧 「민」자가 생겨난 고대사회의 지배자들은 노예를 초사하고 장님처럼 순응하기를 강제했다는 얘기가 된다. 그리고 보면 민이라는 글자가 눈목자와 「민」이라는 두 글자로 분해되는 것도 그럴듯한 일이다.
그러니까 이런「민」이 있는 곳에서는 언제나 독재의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아이티」의 국민도 이런 민이었다. 「아이티」는 남미에서도 국민소득이 제일 낮고, 평균수명도 가장 짧다. 문맹률만이 제일 높다. 더 이상 생활이 악화될 염려는 없었던 것이다.
물론 최근에 이르러 그의 공포정치가 다소 완화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대중식당에서 이마를 맞대고 수군거릴 수 있을 만큼 자유스러워진 것이다.
이것은 그가 두려워할게 이제는 아무 것도 없어졌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그의 지병인 심장병과 당뇨병으로 다소 심약해진 때문이라고도 한다.
아마 64세를 넘기지 못한 것을 그자신보다 더 한스럽게 여긴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런 한에서 그도 자기 아들을 후계자로 지명한다는 전대미문의 일을 치렀을 것이다. 역시 「아이티」의 사람들이 눈 먼 「민」이었기 때문이었을 게다.
이제 새 「아이티」 대통령이 될 20세의 아들은 체중 2백「파운드」의 대식가이다. 그의 취미는 그저 식도락과 「스포츠·카」 뿐이다.
이런 그가 오래 대통령자리에 앉아있으리라고는 아무도 보지 않는다. 그러나 「뒤발리에」의 죽음을 가슴아파하는 사람들의 생각은 좀 다르다. 그것은 미지의 악보다는 차라리 기왕에 빤히 알게 된 악 쪽이 덜 해롭다는 판단에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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