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820)「봄 놀이」에 새「모럴」을|김만규-창경원 관리소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봄맞이 밤 벚꽃놀이가 15일부터 시작됐다. 창경원은 앞으로 한달 동안 밤 10시까지 개장시간을 연장, 화사한 봄밤의 꽃 잔치를 베푼다. 창경원은 가난한 서민의 휴식처이며 모든 어린이들의 「디즈니랜드」-소음과 매연에 지친 도회지 사람들은 창경원의 꽃밭에서 「레저」를 즐긴다. 수학여행 온 시골 어린이들은 원숭이의 재롱에 손뼉치고 홍학의 군무에 넋을 빼앗긴다. 우리는 이들을 위해 온갖 채비를 서둘러왔다. 각종 동물 사를 말끔히 단장하고 홍화문 안 간선도로에는 보도 「블록」을 깔았다. 꽃놀이의 「히로인」 벚꽃은 이 달 20일쯤 피기 시작하여 22∼25일쯤에는 창경원은 온통 분홍빛 꽃 내음에 묻히게된다.
이때면 하루 최고 20여 만의 상춘객이 몰려 봄의 축제는 「피크」에 이른다. 우리는 해마다 봄맞이 잔치를 벌이고 있으나 항상 뒷맛이 개운치 않다. 완벽하지 못한 시설과 「서비스」가 손님들에게 불편을 주기도 하지만 인파가 흘러가고 난 뒷자리는 각박한 세태를 느끼게 한다. 꽃가지가 꺾여지고, 소주병과 「콜라」병이 나뒹굴고, 도시락을 쌌던 휴지가 어지럽게 날린다. 지난해 1년 동안 3백19만여 명이 지나간 자리에는 3천여 「트럭」 분의 쓰레기가 나왔다. 7백여 동물 가족은 주말을 치르고 나면 「월요병」으로 축 늘어진다. 장난꾸러기들이 던져준 돌·담배꽁초·「비닐」종이를 마구 받아먹어 배탈이 나는 까닭이다. 창경원은 잡된 놀이터가 아니다. 우리 선조의 얼과 손때가 묻은 고궁이 있고, 동물원과 식물원은 어린이들의 시청각 교실이기도 하다.
우리 모두 꽃 밤의 창경원을 조용히 거닐면서 새로운 「모럴」을 찾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