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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적 이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서울대학교 단과 대학들은 하나, 둘 교문을 닫기 시작했다. 문이 닫힌 교문엔 전투복 차림의 기동 경찰들이 서성댄다. 책 보따리를 들고 교문 밖에 우두커니 서서 고지 판을 보고 있는 대학생들의 모습은 어딘지 을씨년스럽다.
그 한 옆으론 개나리꽃들이 방금 피고 있다. 교정의 나무들도 이젠 싱싱한 싹들이 움트기 시작했다. 죽은 듯 가만히 있던 나무들의 가지마다에서 파열하는 생명의 빛을 보는 감동은 여간 아니다. 만물이 생동하는 시절. "검은 땅속에서 「라일락」뿌리가 움찔거리듯" 이라는「엘리어트」의 시구가 실감이 난다. 아니, 벌써 꽃은 피고 있다.
새싹과 기동 경찰과 휴교. 「아이러니컬」한 대조들이다. 교정은 죽은 듯 정적 속에 잠기고, 수목들만 수런수런 약동한다.
언제까지 그 교문들이, 닫혀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세상이 조용하면 다시 열겠지!" 라고 들 생각한다. 그러나 그「조용한 때」 란 언제일지-.
문제는 이른바「데모」자체에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휴교는「데모」를 중지시킬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그 이외의 다른 의미를 가질 수는 없을 것 같다. 동기의 해소가 없는「데모」만의 중단은 그냥 중단일 뿐이다.「동기」는 진지하게 누구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이 옳으면 옳은 것에 대한 대처가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옳지 않으면, 그 사실을 학생들에게 이해시켜야할 것이다. 대학생들은 잠재적으로 열정에 넘친 세대이긴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스스로 이성을 갖출 줄 아는 연대이다. 사리를 천천히, 친절하게, 설명하고 납득을 구하는 것은 민주사회의 미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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