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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도 '냄비 증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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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지난해 주가 하락으로 9억3천만원의 평가손을 본 박승(朴昇)한국은행 총재는 주식이나 수익증권을 일단 매수한 뒤 장기 보유하는 투자전략을 구사했다.

중앙은행 총재라는 자리 때문에 오해를 사지 않으려 아예 주식을 그냥 방치했다고 하지만 주식 투자의 오래된 정공법 가운데 하나인 장기 투자(buy and hold)원칙을 제대로 지켰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의 경제주간지 비즈니스 위크 최신호(3월 10일자)는 미국 증시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어 장기 투자는 더 이상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도했다. '양은 냄비'처럼 후끈 달아올랐다가 금방 식어버리는 등 미국 증시의 변동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S&P 500 지수가 하루 2% 이상 급등락한 날은 모두 52일로 대공황 때인 1938년 이후 가장 많았다. 거래일 기준으로 닷새 가운데 하루는 롤러코스터 장세였던 셈이다. 나스닥은 지난해 닷새에 이틀꼴로 2% 이상 오르내려 더 심한 변덕을 부렸다.

BW는 증시의 변동성이 커진 것은 이라크 전쟁이나 미국 본토에 대한 테러리스트의 공격 가능성 등으로 인한 불안감도 한몫 하고 있지만 다음과 같이 보다 구조적인 요인이 있다고 분석했다.

◇증시의 선수 교체=주식을 매수하면 일단 한동안 보유하는 전략을 구사하던 수백만명의 보통 투자가들이 증시를 떠나고 있다. 미국 개인투자자들이 주로 가입했던 주식형 펀드 규모가 지난해 2백70억달러나 줄었다. 18년 만에 가장 큰 규모다. 반면 채권 펀드에는 1천2백40억달러가 몰렸다.

그 자리를 어지러운 속도로 주식을 사고 파는 헤지펀드 등의 전문 투자가들이 메우고 있다. 지난해 컴퓨터를 이용해 한꺼번에 주식을 대량으로 매매하는 프로그램 매매의 비중이 뉴욕 증권거래소 전체 거래량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증시 선진화의 부작용(?)=장외 전자거래시장이 생겨나고 증시가 국제화되면서 24시간 내내 거래가 가능해졌다. 휴장과 휴식은 일종의 '서킷 브레이커(주가가 급등락할 때 매매를 강제적으로 잠시 중단시키는 것)' 역할을 한다. 투자자들의 쉴 틈이 줄어들면서 시장 참여자들은 여유를 잃었다.

◇기업회계 환경의 변화=투자자들이 예상하고 있는 수준보다 실적치가 훨씬 높거나 낮게 나오면 주가는 이를 즉각 반영해 출렁거린다. 최근 분식회계 스캔들 탓에 이 같은 '어닝스 서프라이즈(earnings surprise)'가 늘어났다.

재무제표에 대한 감시가 엄격해지자 기업들은 실적이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상관없이 특정 분기의 실적을 법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에서 적정하게 배분하기가 어려워졌다. 이런 이유로 발표되는 실적의 진폭이 예전보다 커지고 주가의 급등락도 덩달아 더 심해졌다.

미국 회계법인 관계자는 "과거에는 재무제표의 일관성을 요구하던 애널리스트들이 요즘엔 실적치가 완만하게 오르내리면 분식회계의 냄새가 난다며 오히려 의심의 눈길을 보낸다"고 불평했다.

◇급등락장에서 살아남는 법=장기 보유 전략은 이젠 옛날 얘기다. 한달 또는 적어도 분기에 한번은 자신의 투자 포트폴리오를 재조정해야 한다.

특히 주식시장의 오르내림과 상관없이 수익을 기대하려면 헤지펀드나 금.부동산.상품 펀드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BW는 자산의 75%는 주식.채권과 현금으로, 자산의 10%를 선물기법 등을 이용해 증시의 등락과 상관없이 수익을 올리는 헤지펀드에, 나머지 15%는 금.부동산.상품펀드에 각각 5%씩 투자하는 포트폴리오를 제시했다.

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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