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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없는 그래피티 화가 뱅크시, 뉴욕서 팬들과 숨바꼭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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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뱅크시가 뉴욕 이스트빌리지 공터의 폐차에 그린 이라크 전쟁 고발 작품.

1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 앞 노점상에 개당 60달러(약 6만4000원)짜리 판화 작품 20여 개가 진열됐다. 파리만 날리던 노점상은 4시간이 지나서야 ‘개시’를 했고, 첫 손님에게 2점을 60달러에 주는 선심을 썼다. 이날 하루 노점상이 판 그림은 8점. 이런 사연을 판화 작가가 웹사이트에 올리면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작가가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그래피티(스프레이 페인트로 거리 벽이나 바닥에 그린 낙서나 그림) 아티스트 ‘뱅크시(Banksy)’였기 때문이다. 뱅크시의 작품은 뉴욕과 런던의 경매에서 최고 100만 달러에 팔린 바 있다.

 뒤늦게 소식을 들은 팬들은 앞다퉈 센트럴파크로 몰려갔지만 그의 작품은 이미 노점 매대에서 사라진 뒤였다.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강한 사회적 풍자를 담은 그래피티 작품을 남겨 ‘아트 테러리스트’란 별명이 붙은 뱅크시가 이달 초부터 뉴욕에서 벌이고 있는 작품 이벤트의 하나였다. 그는 “한 달 동안 뉴욕 곳곳에 작품을 남기겠다”고 밝혔었다.

 그는 얼굴 없는 화가로 유명하다. 1974년 영국 브리스톨에서 태어났다는 것 외에 알려진 게 없다. 2011년 그가 감독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아카데미상 후보로 올랐을 때도 주최 측이 ‘시상식장에 복면을 쓰고 참석할 수 없다’고 하자 참석을 거절했다. 작품 활동도 심야나 인적이 드문 시간에 몰래 한다. 그러곤 웹사이트(www.banksy.co.uk)를 통해 작품을 공개하는 ‘게릴라 작품 활동’을 해오고 있다.

 뉴욕에서도 곳곳에서 팬들과 숨바꼭질을 하고 있다. 젊은이의 거리인 이스트빌리지 공터에 버려진 폐차에 그린 이라크 전쟁 고발 작품엔 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웹사이트에 공개된 수신자 부담 전화에 작품 번호를 입력하면 이라크 전쟁 당시 미군 병사들의 무전 교신과 기관총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미군 병사들은 낄낄대며 “저기 한 놈 기어간다”며 기관총을 쏴댄다.

 거리 예술이다 보니 그의 작품은 훼손되기 일쑤다. ‘그래피트 낙서는 범죄 행위’라고 적힌 벽보를 조롱하는 그림을 뱅크시가 남기면 건물 주인이 흰색 페인트로 지워버리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는 이달 말까지 뉴욕에서 작품 활동을 계속하겠다고 공언했다.

뉴욕=정경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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