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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방문화|존재하나|상고문화에 남방적 요소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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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소장· 국사학자 김정배씨는 근래 우리나라 국학계에서 자주 논의되는 「남방문화」란 용어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하면서 『한국의 유물과 풍속이 금일의 남중국 인도 및 동남아와 관련을 갖는다 해도 그것이 곧 남방문화는 결코 아니라』고 말했다. 고대 전임강사인 김씨는 최근 간행된 「백산학보」 제 9호에 기고한 논문『한국에 있어서의 남방문화론』에서 그의 스승을 비롯한 학계 선배의 이론에 도전하여 과거의 오류를 깊이 반성해야할 것이라고 촉구하는 한편 「남방문화」라는 용어 자체를 부정했다.
「백산학보」에 발표
자신의 견해를 다부지게 전개해 주목받는 소강학자의 한사람인 김강사는 「남방문화」 란 용어가 일본에서 2차 대전 당시 널리 사용한 것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부지부식간에 학계에서 통용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 『남동「아시아」와 일부 남태평양까지 포함하는 그런 학술상의 개념은 국제적으로도 예를 찾을 수 없고 오히려 학문교류에 장애가 될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의 이 같은 견해는 우리 나라 상고문화에 동남아 및 남중국과 전래문제가 생긴다던가 혹은 「오세아니아」 지역에서 남중국 및 동남아와 유사한 유물·풍속이 출현할 수 있는 것은 중국북부 앙소·용산 문학의 확대에서 오는 남하로 말미암은 것이란 점에 근거를 두고 있다. 즉 용산 문화의 확대와 남하에 따라 이를 발판으로 중국상고사의 문화와 국가가 성립되었음은 물론, 동남아에서 몽고계통의 체질적 흔적을 불 수 있을 이만큼 그 용산 문화는 급격히 남중국에 파고 들어감으로써 원주민들이 자연히 밀려 대이동을 했으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용산 문화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던 한국에 있어서 남방적 요소를 말한다는 것은 숱한 허점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는 지론이다.
우리 나라 학계에서 「남방」이란 용어를 쓰기 시작한 것은 최남선·손보태·이내찬씨 등이 극히 단편적인 어구로 사용한 것으로부터 비롯되지만 구체적인 논문으로는 1963년 이후이다. 수태섭·김원룡·김정학·이광기제씨가 많이 언급한 것이다. 1968년 한국문화 인류학회의 「심포지엄」에서 남방문화의 존부를 논점으로 삼은 이래 학계의 커다란 관심거리가 되어 빈번한 논의가 오고갔다.
그럼에도 김강사는 개념규정이 모호한 「남방적 요소」가 한국과 분명히 연결된다 하더라도 「남방」으로 표현될 수 없으며 오히려 명확한 지명·국명·지역 명으로 나타내야 마땅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우리 나라 상고사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문신·옹관· 「돌멘」·도작·반월도· 유구석부 등에 대하여「아시아」 일대의 분포상황을 들어 그의 지론을 풀이했다.
옛 문헌에 정신한의 풍속으로 기록된 문신과 편두는 세계적으로 널리 분포되어 있는 것으로 일본·남중국은 물론 인도·배「코카시안」·「훈스」와 「터키」족·「이집트」·「멕시코」 등지에서도 보고돼 있다.
옹관에 있어서도 동옥저·부여·고구려는 물론 연 나라의 일부지역과 일본구주에 걸치고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극동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옹관과 관련하여 세골장이란 점에서 보면 동남 「아시아」와 「시베리아」 「필리핀」 인도 등 넓은 지역에 퍼져있어서 우리와 어느 선에서 해석돼야 할지 판명이 어려운 형편이다.
「돌멘」의 분포는 옹관과 비슷하게 한국·중국동북·일본구주에 퍼져있는데 이들의 전파경로가 아직 명확치 않다.
벼농사의 발상은 남중국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지만, 중국의 고대문명이 용산 문화의 확대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요, 또 농경의 시원지를 극동에 있어서 「호빈히안」 「요몬」 북중국으로 보는 학설도 없지 않다.
우리 나라에서 발견되는 특수 석기인 유구석부는 근래 중국 동남부에서 다량으로 출토됐고 동남아 「멜라네시아」 「폴리네시아」 등지에서도 폭 넓게 나왔고 상호간 많은 차이를 보여 그 해석에 문제점이 있다.

<앙소·용산문화와 한국>
앙소문화는 북중국에서의 신석기시대 말쯤인 기원전 2천년께 황하중류 하남성 앙소지방에서 독특하게 일어났던 문화. 1921년「J.G·앤더슨」의 소개로 비로소 알려졌는데 적색 및 채색도기로 특징을 삼는다. 이보다 뒤에 황하하류 산동성 용산 지방을 중심으로 일어난 성자애문화는 중국최초의 역사시대문화인 은 문화의 직접 조상이라 할 수 있다. 후기 신석기 시대에 속하는데 광채 있는 흑색도기가 특징적이다. 이 흑도문화는 남중국에 급진적으로 확대됐을 뿐 아니라 한반도의 서해안 일대에서도 흑도가 발견되고 있다. 69년 서울 성동구 가락동 선사유적에서 발굴된 2개의 흑도는 그 대표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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