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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 듯하다 깨진 미국 부채한도 협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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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1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의사당에서 공화당 소속 상원의원들이 부채한도 협상에 관한 회의에 참석하기 전 얘기를 나누고 있다. 문밖 앞쪽부터 제프리 치에사(뉴저지), 제프 플레이크(애리조나), 존 매케인(애리조나) 의원. 다음 날 상원에서 민주당이 제출한 부채한도 증액안은 부결됐다. [워싱턴 AP=뉴시스]

미국 부채한도 협상이 깨졌다. 공화당 상원의원들은 13일 새벽(한국시간) 민주당이 제출한 부채한도 증액안을 부결시켰다. 찬성과 반대는 53대 45였다. 민주당이 다수당이어서 증액안이 과반수를 얻기는 했다. 하지만 의사진행 방해(필리버스터)를 막을 수 있는 60표엔 미치지 못했다.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인 미치 매코널 의원이 부결 직후 “양쪽이 합의에 이를지 자신할 수 없다”고 토로한 것으로 블룸버그통신이 이날 전했다.

 민주당 안은 연방정부의 마이너스 통장 한도(부채한도·현재 16조7000억 달러)를 늘려 만기를 2015년까지 연장하는 것이었다. 통과될 가능성이 없진 않았다. 지난주 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민주·공화 의원들을 연쇄적으로 백악관으로 초청했다. 뭔가 이뤄질 듯한 분위기였다. 지난 금요일 한국과 미국, 유럽 주가가 가파르게 올랐다.

 그러나 상원 표결 직전 오바마 대통령이 공화당 하원의원들의 제안을 거부했다. 백악관 대변인인 제이 카니는 “6주(42일)만 연장한다면 올해 추수감사절 쇼핑시즌에 다시 지금과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고 지적했다. 이 소식이 전해진 순간 공화당 상원의원들의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애초 공화당 하원의원들은 6주 정도 쓸 수 있는 정도만큼 부채한도를 늘려주는 방안을 제시했다. 오바마가 이 안을 거부하지 않았다면 타결 가능성도 없진 않았다. 상원과 하원이 각각 법안을 통과시킨 뒤 절충안이 마련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이제 오바마-공화당 협상은 원점으로 회귀했다. 아직 양쪽은 협상 일정도 잡지 못하고 있다. 공화당 하원의원들은 한국시간 15일 새벽까지 어떤 표결도 하지 않을 예정이다. 일부 민주·공화 상원의원이 물밑에서 대화하고 있을 뿐이다.

 미국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대한 우려는 10~12일 워싱턴에서 열린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총회와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도 압도해버렸다. 다른 현안들이 논의됐지만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중앙은행 총재와 재무장관들은 백악관과 의회를 향해 “즉각적인 행동(urgent action)에 나서라”는 경고성 발언을 연이어 했다.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만약 이번 사태가 장기화된다면 미 경제는 물론 세계 경제에도 매우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라며 “세계 경기회복에도 치명적”이라고 강조했다. 김용 세계은행 총재는 “미 부채한도 증액 협상은 마감일을 넘기지 않고 타결돼야 한다”며 “부결 시 특히 가난한 국가에 참담한 사태가 닥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연차총회에 맞춰 워싱턴에서 열린 국제금융협회(IIF) 회의도 미 의회와 정부를 압박하는 성토장으로 변신했다. 대형 민간 금융사 최고경영자들이 참여하는 회의인 만큼 어조는 한결 직설적이었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대표는 “제발 자기 발등을 자기가 찍는 일만은 하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도이체방크의 안슈 자인 공동대표 역시 “디폴트 사태가 닥친다면 ‘완벽한 파멸’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직 오바마-공화당이 타협할 시간은 남아 있다. 부채한도 협상이 17일을 넘겨도 당장 미국은 디폴트에 빠지지 않는다. 재무부 금고에 300억 달러(약 33조원)와 17일 이후 걷힐 세금이 남는다. 그렇다고 미 정부가 오래 견디는 것은 아니다. 블룸버그는 “다만 300억 달러+α만으로 미국이 견딜 수 있는 시간은 일주일 정도”라며 “부채한도가 끝내 확대되지 않는다면 이달 22~31일 사이에 세계 경제 중심인 미국이 부도를 낸다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라고 전했다. 오바마-공화당이 부채한도 연장에 집중하는 바람에 셧다운(연방정부 폐쇄)은 뒷전에 밀린 모양새다. 이제 셧다운은 두 번째 주를 지나 세 번째 주에 들어선다. 두 주간 셧다운 때문에 올 4분기 경제 성장률이 0.2~0.3%포인트 정도 낮아질 전망이다. 올 4분기 성장 예상치는 2.5%(연율) 정도였다. 셧다운이 3주나 4주 정도 이어지면 성장률이 1%포인트 정도 낮아질 수 있다는 게 월가의 일반적 예상이다.  

강남규·조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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