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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를 위한 조언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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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4호 30면

삼성전자가 시장의 예상을 뒤엎는 3분기 잠정 실적을 최근 발표했다. 분기 영업이익은 처음으로 10조원을 뛰어 넘었다. 2, 3분기 연속 사상 최대 실적 행진을 이어가면서 삼성전자에 대한 시장의 우려는 어느 정도 불식됐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여전히 스마트폰 의존도가 높아 고가 스마트폰의 성장 둔화에 따른 후폭풍이 우려되는 것도 사실이다.

올해는 삼성이 신경영 선언을 한 지 20주년이 되는 해다. 삼성은 그동안 낡은 의식과 관행을 떨쳐버리고, 양보다 질 중심으로 경쟁력을 키우는 데 성공했다. 단순한 성공이 아니라 대성공이었다. 삼성의 간판인 삼성전자는 아시아의 중소기업에서 세계 일류기업으로 올라섰다. 매출액 기준 세계 14위, 브랜드 가치 세계 9위, 휴대전화 부문 영업이익률 명실상부한 세계 1위의 정보기술(IT) 기업이 되었다. 10년 전 삼성전자가 벤치마킹을 했던 글로벌 기업들이 지금은 거꾸로 삼성전자를 배워야 하는 입장으로 바뀌었다. 연매출 200조원의 거목으로 성장한 삼성전자의 발전사는 경영학에서 가르치는 우수 기업 사례로도 손색이 없다.

그러나 격세지감을 느낄 이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 내부에서는 샴페인 터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아마도 시장의 변화가 너무 빨라 자만에 빠질 여유가 없어서일 것이다. 삼성전자는 이미 세계 최강이었던 노키아·모토로라를 따라잡았지만 이들을 각각 인수한 마이크로소프트(MS)나 구글과는 또 다른 경쟁이 예고돼 있다. 잠시라도 방심하면 한순간에 몰락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삼성 내부에 팽배해 있다. 특히 MS나 구글은 소프트웨어 역량에서 훨씬 앞서 있다. 이들 기업은 하드웨어 부문과 시너지를 발휘해 강력한 파급효과를 거두겠다는 전략을 짜고 있다. 중국 전자업체들의 발전 속도는 더욱 무섭고, 이들의 성장 공식은 선진국 업체들보다도 한층 선진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전자는 생존을 위해 ‘전자(electronics)’를 떼어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상호를 고치라는 게 아니라 하드웨어 중심에서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사업 체질을 강화해야 한다는 얘기다. 사실 IT 주도 기업들을 보면 운영체제(OS)나 플랫폼과 같은 강한 소프트웨어 역량을 중심에 두고 있다. 우리는 하드웨어라는 한쪽 날개에 의존하다가 시장에서 도태된 수많은 과거 챔피언을 보아 왔다. 물론 삼성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하드웨어를 다루면서도 부품·세트의 이원화된 전략으로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고, 첨단 기술과 규모의 경제를 통해 시장을 주도해 왔기 때문이다.

오늘의 삼성전자를 만든 것은 첨단 기술이나 규모의 경제뿐 아니라 일하는 방식, 조직 운영, 인력 양성 등의 분야에서 정교하게 설계된 여러 혁신 과제들을 추구하며 변화에 적응해 온 노력 덕분이었다. 특히 삼성은 조직의 변화를 구호로만 그치지 않고 상시적 구조조정이나 철저한 성과 보상 등을 통해 강력한 실행력을 보여줬다. 여기에다 오너의 책임감 있는 리더십이 더해져 도약을 거듭했다. 반도체와 스마트폰은 삼성전자의 도약대였다.

삼성전자는 이제 제3도약대를 찾고 있다. 이것이 OLED가 될지 헬스케어가 될지, 아니면 또 다른 아이템이 될지는 미리 점치기 어렵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오늘의 삼성전자를 만든 조직 혁신의 원칙과 실행력을 지속적으로 작동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공급자 위주의 제조 기업에서 소비자·협력업체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소통하는 소프트 기업으로 탈바꿈해야 한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삼성전자가 고객 눈높이에 걸맞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통합을 갖추었다고 자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그중 가장 중요한 건 지속적인 성장을 가능케 할 정확한 의사판단 능력일 것이다.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매출 호조로 분기 이익과 분기 매출에서 사상 최고 기록을 경신해 나가고 있다. 시장의 기대는 과잉상태인지 모른다. 그래서 경영진은 큰 압박감을 받고 있을 것이다.

지금의 삼성이 정점일지 이제 시작에 불과할지는 삼성이 앞으로 보여줄 지속적인 성장 잠재력에 달려 있다. 향후 5년간의 변화 속도는 지난 10년간보다 빠를 테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빠른 의사결정 그 자체가 아니라 정확하면서도 빠른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하는 삼성의 본원적 경쟁력이다. 삼성이 100년, 아니 그 이상을 생존하기 위해서는 급속한 성장이 아니라 지속적인 성장이 필요하다. 삼성이란 이름이 전자업체가 아니라 혁신·창조의 상징으로 두고두고 기억되기 위해서다.



이정훈 서울대 제어계측공학과 석·박사. 미시간대 MBA. LS산전 중앙연구소를 거쳤으며 포트폴리오·상품·고객관리·구매 전략 프로젝트를 주로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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