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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갑 맞는 작가 박영준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노작가 박영준씨의 서재에 스며든 다사로운 봄의 소리는 바로 박씨 자신의 새로운 의욕의 숨결이었다. 반드시 계절때문만도 아니고 때마침 맞게된 회갑(28일) 때문만도 아니다. 문득 지나온 세월이 무척 길게 느껴졌고 그 긴세월 동안 쌓아온 탑이 마치 신기루처럼 아득하게 멀어지면서 가슴속 한구석에서 새로운 의욕의 샘이 커가기 시작한 것이다.
만우 박영준씨가 문단의 험로에 첫발을 내디딘 것은 1934년 봄(조선일보신진문설서『모범경작생』당선)이제 꼭37년에 이른다. 2차대전 말기부터 해방까지 1,2년을 제외하고 그 37년을 줄곧 원고지를 메우며 살아왔다. 그동안 발표된 작품만도 장편15편에 단편이3백여편. 그 자신『별로 한일이 없다』지만 원고지로 따지자면 10여만장에 이른다. 『쓰고 나면 으레 불만이 뒤따르고…. 그래서 항상「다음엔 꼭-」하는 결심을 하곤 하지만 그렇게 되풀이하는 동안 어느새….』
박씨는 주름이 가득한 얼굴을 어루만지면서 그러나「정작 이제부터」라는 굳은 결의를 보인다. 전문학교(연전문과)에 들어가면서부터 작가가 돼 보겠다고 생각했다는 박씨의 필생의 꿈은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세계에 내놓아 손색없는 작품을 쓰는 것. 이 소원이 생전에 이루어질는지는 더 두고 봐야 알겠으나 그저 열심히 해볼 뿐이라고 말한다.
박씨는 참으로 열심한 작가다. 대개의 작가가 몇 차례씩의「블랭크」를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박씨는 붓을 잠시도 놓은 일이 없다.
일제말기 한글탄압이 심해 잠시 낙경했던 때를 제외하고는…. 흔히 작가는 자기 작품속에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 많은데 박씨에게서는 그것이 더욱 두드러져 그의 작품에서는 늘상 그와 같은 열심한 사람들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데뷔」직후인 36년에 발표한『중독자』(그 자신 가장 아끼는 작품이라 한다)나 최근에 발표한『뛰는 사람』이나 주인공에게서는 박씨의 냄새가 난다. 박씨 자신을 작품속에 자신을 직접적으로 노출시키고 싶지 않은데 써 내려가다 보면 무의식중에 자신의 모습을 그리게 된다고-.
『원고료가 적다거나 이것저것 여건이 나빠 글이 잘 안된다는건 변명에 지나지 않아요. 나 자신 초기에는 문단활동이 없어 작품이 빛을 보지 못하게되니까 굉장히 불우하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바로 내 탓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지요.』워낙 과묵한데다가 남들과 쉽게 친하지 못하는 별난 성격때문에 노작가의 주변은 항상 쓸쓸하다. 강의(연세대)가 끝나면 곧바로 시청앞의 G다방으로 달려가 1시간이고 2시간이고 고전음악을 즐기며, 명상에 잠기다가 해질녘에야 집에 돌아간다.
그러나 박씨도 외롭지는 않다. 학교내에서지만 좋아하는 젊은이들 틈에서 호흡할 수 있고, 일요일이면 젊은이들 틈에 끼여 등산도 하고…. 그리고 주위의 몇 사람들이 만우회갑기념문집간행회 구성, 박형준대표전집 (장독 『오늘의 신화』와 단편집『슬픈 행복』기 출간)을 준비하고 있어 노작가를 흐뭇하게 해주고 있다. 아마도 박씨의 소원이 이룩되는데 큰 힘이 될 것이다. <정규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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