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 놀라운 생명의 끈질김이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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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인도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겨우 마련한 비행기표는 방콕 경유 콜카타(구칭 캘커타)행. 한밤중에 방콕에 도착해 터미널을 빠져나오니 뜨거운 열기와 함께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배기가스 냄새다. 공항이 이 정도면 시내의 상황은 물어보나마나다. 나도 요란한 엔진 소리를 내는 택시를 잡아타고 예약한 호텔로 가면서 '오염의 도시' 방콕에 온 것을 실감한다.

다음날 공항을 가기 위해 하우람퐁 중앙역으로 갔다. 역이 시내 중심가에 있어 10분만 역앞에 서 있어도 숨이 막히고 가슴이 울렁거렸다. 열차에 올라타서 무심코 건너편 선로 사이의 좁은 수로를 바라보니 고인 물 표면이 햇빛을 반사해 마치 거울처럼 반짝인다. 그런데 그 표면이 옴쭉들쭉하는 것이 몹시 번거롭다. 처음엔 고인 물에 흔히 서식하는 모기 애벌레들의 장난이거니 했다.

내가 탄 열차의 바로 아래 수로에도 분주하게 움직이는 생물체가 있어 한참 들여다보았다. 작은 물고기들이었다! 물 표면은 기차에서 흘러나온 검은 기름으로 번지르르했고 수로의 양옆은 승객들이 버린 쓰레기로 모두 막혀 있는, 한뼘도 안되는 고인물에 물고기들이 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곳에 물고기라니! 놀란 마음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시커먼 물체가 출발을 서두르는 기차 위로 쑥 올라온다. 두꺼비였다!

방콕의 풍경을 뒤로 하고 콜카타에 내렸다. 콜카타. 어느 시인은 아름다운 풍경을 앞에 두고 그것을 필설로 표현할 수 없음을 한탄했다는데 나에게는 콜카타의 참상이 그러했다. 눈이 따가울 정도의 대기오염 속에 폐차 직전의 수많은 차량들과 남루한 옷차림의 인파와 온갖 동물들이 뒤범벅돼 하나의 '커다란 혼돈'을 이루고 있었다.

콜카타의 명물이 된 마더 테레사의 집을 찾았다. 가는 길목마다 참상의 연속이었다. 어느 길목의 폐허가 된 집터에서였다. 아마도 쓰레기 집하장인 듯싶은데 아이들이 작대기를 들고 여기저기 널린 쓰레기더미를 헤치고 있었다. 대여섯 마리의 검은 소와 수십 마리의 까마귀떼도 한데 어울려 쓰레기 사냥에 여념이 없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쓰레기장 바로 옆에 부서진 벽돌을 얼기설기 쌓아 겨우 벽가림을 해 놓고 한 사나이가 다 떨어진 널빤지 위에서 숯불로 달군 다리미로 옷을 다리고 있었다. 저런 장소에서 옷다림이라니…. 그는 제 옷이 아니라 돈을 받고 남의 옷을 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마더 테레사의 집. 이곳은 죽어가는 사람을 돌보는 '임종의 집'이 아니라 버려진 아이들을 맡아 키우는 유아원이다. 콜카타의 일반 거주지와 비교하면 아주 번듯한 콘크리트 건물 안에 2백여명의 버려진 아이(6세 이하)들이 보모들의 보살핌 속에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길거리에서 쓰레기통이나 뒤지고 다니는 아이들과 비교하면 분명 행운아들이다. 한쪽 건물엔 정상아가, 다른 한쪽엔 정박아들이 수용돼 있었다. 정박아실로 갔다. 두팔이 없어 발로 건반을 두드리고 있는 아이, 끝없이 같은 말만 중얼거리고 있는 아이, 사지가 굳어버린 채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고 있는 아이….

한 아이가 뭐라고 악을 쓰며 창밖을 손으로 가리킨다. 가로수 사이로 내려다보니 길거리에서 먹고 자는 한 가족이 거적때기 위에서 어린아이를 어르고 있었다. 풍찬노숙일지라도 부모의 품이 천국이라는 것을 알고 악을 쓰는 것일까? 눈을 들어 다시 가로수를 바라보았다. 오염물질을 잔뜩 뒤집어 쓴 시꺼먼 이파리들 사이로 연녹색 싹이 희끗희끗 올라오고 있었다.

황대권 <생태공동체 운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