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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곡진 김금화의 삶, 그 자체가 씻김굿이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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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박찬경 감독은 내년 열릴 ‘미디어시티서울 2014’의 예술감독도 맡고 있다. ‘만신’은 내년 3월께 일반 극장가에도 개봉할 예정이다. [사진 전소윤(STUDIO 706)]

정전 60주년인 올해 제5회 DMZ다큐멘터리영화제 개막작으로 ‘만신’이 선정됐다. 중요무형문화재 제82호(서해안 배연신굿 및 대동굿) 예능보유자인 김금화(82)를 통해 무속의 세계를, 나아가 한국현대사를 펼쳐 보인 작품이다.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조명해온 박찬경(48) 감독의 신작이다. ‘만신’은 무당을 높여 이르는 말이다.

 박 감독은 김금화에 대해 “앞으로 10년 이상 그의 얘기를 풀어보고 싶을 만큼 매력적인 인물”이라고 했다. “가무에 능하면서 영험하기까지 한 무당은 좀체 없어요. ‘굿의 천재’라고 느껴질 정도입니다. 무가(巫歌) 사설집을 출판하고, 매스컴에 적극 자신을 드러내는 등 무속을 우리 시대의 문화로 만든 ‘열린 사람’이기도 하고요.”

 박 감독은 사진작가 고(故) 김수남의 사진집에서 김금화를 처음 접했다. 김금화의 자서전 『비단꽃 넘세』를 2년 전 읽고 다큐 작업을 결심했다. 어린 김금화의 내림굿 이야기를 담은 ‘그날’(2011), 분단 이후 김금화가 남북 양쪽에서 첩자로 오인 받는 상황을 그린 ‘갈림길’(2012) 단편 두 편도 발표했었다.

영험하고 가무 능한 매력적 인물

 장편 ‘만신’은 기존의 단편을 재편집하고, 서해안 배연신굿 장면 등 여러 자료를 덧붙여 완성했다. “처음부터 전체를 구상하고 시작한 작업입니다. 예산 제약으로 단편을 먼저 만들고, 이후 일반인 펀딩 등으로 제작비를 모았습니다.”

 김금화는 팔십 평생 한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은 인물이다. 어린 시절 고향 황해도에서 내림굿을 받고, 6·25로 월남한 뒤 미신 타파를 내세운 새마을운동의 공격 대상이 됐다가, 80년대 군사정권의 문화정책으로 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가 됐다. 영화에는 그의 굴곡진 삶이 휘몰아치는 무악(巫樂)에 맞춰 넘실거린다. 박 감독은 “우리 현대사에서 개인사와 역사가 충돌하는 지점을 주목했다”고 했다.

드라마·다큐에 애니까지 곁들여

 만신은 개인은 물론, 나라에 큰일이 터질 때마다 희생된 이들의 넋을 위로하는 굿거리를 펼친다. ‘만신’은 그 과정을 착실하게 좇으며 이것이 종교적 이념을 넘어선 숭고한 문화임을 증언한다. 배우 김새론·류현경·문소리가 김금화의 세대별 모습을 재연했고, 애니메이션 효과 등 판타지 분위기 장면도 여럿이다.

 박 감독은 “굿을 다루는 다큐에서 판타지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무당의 삶 자체가 환상과 현실의 경계인 셈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어린 김금화가 마을을 돌며 신물로 쓸 쇠붙이를 모으는 모습을 재연한 마지막 장면에 이르면 ‘만신’은 세상을 위로하는 한 판의 씻김굿처럼 다가온다. 감독이 뜻한 바다.

 “화가 천경자의 말인데, 어릴 적 시골에 순회 영화가 들어오면 ‘굿 구경 가자’고 했답니다. 그 때는 굿이 영화처럼 오락으로 여겨졌던 겁니다. ‘만신’을 한 편의 영화이자 굿처럼 만들고 싶었습니다. 김 선생은 물론 무속 전반을 다루는 전시도 내년, 혹은 그 후년쯤 마련할 생각입니다.”

이은선 기자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DMZ와 다큐멘터리의 만남을 주제로 2009년 시작됐다. 올해에는 17~23일 38개국 119편의 다큐를 선보인다. 주요 상영관은 경기도 고양시 롯데시네마 라페스타점. 자세한 상영 정보는 영화제 홈페이지(dmzdocs.com)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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