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신 북상-고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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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우리 나라에서는 죽어서 원혼이 된다.
저 세상으로 못 가는 원혼이 된다.
서울여자들아 그대들은 아느냐
밤마다 내가 원혼으로
휴전선을 넘어서
혹한의 두만강남양읍에 간다.
또한 그것은 제주도나 사태난 남해로부터
여러 산야와 혼란을 지나서
북쪽으로 북쪽으로 오르는 화신이다.
가는 곳마다
서러운 우리 나라의 꽃을 피게 하고
금강산 비로봉비탈이나
개마고원의 자작나무 숲까지도 깨워서
내 원혼으로
지난해 10월 기러기 소리를 떨어뜨린다.
서로 적이 되고 서로 이름을 모르는
우리 나라의 공중을 내려 가서
비로소 푸르둥둥한 두만강에 이른다.
서울 여자들아 그대들은 아느냐
밤마다
이천여만의 신음 소리가 얼어서
내 원혼과 화신에 풀리는 강물을.
살아서 가장 먼 곳이
죽음으로 가까운 강물을.
밤마다 화신이란 화신을 다 데리고 가서
마침내 우리 나라의 꽃이 우리 나라
남북에 피고
봄이 오면 꽃 피는 원혼으로
내가 살아서
우리 나라 하늘과 땅 사이에 울부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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