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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예금이자 과세시비 안팎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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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세제개혁을 추진중인 세제심의 위원회는 기업예금이자에 대해 과세하기로 의견을 모으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세법개정 때마다 거론되어 찬반·시비의 곡절을 겪어온 터라 이미 이 문제에 관한 한 찬반의 논거는 다 드러나 있는 셈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찬반양론이 모두 기업예금이자소득과세의 궁극적인 당위성에 대해서만은 이의를 달지 않고 있는 점이다.
이미 축적된 부를 가진 자에 대한 특혜의 존속은 IMF 전문가나 합리적으로 훈련된 서구학자들의 입을 빌지 않더라도 충분히 불 합리·불공평한 것으로 지적될 수 있으며, 이런 불 합리와 모순이 조만간 시정되어야 한다는 점에는 이론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에 대한 시비가 아직도 끝이 나지 않고 있음은 이른바 경제정책의 상대성에 기인된다.
하나의 정책목표를 위한 수단이 또 다른 정책 목표와 마찰을 일으킬 때 이를 합리적으로 선택, 조정, 상호 보완하는 작업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예금이자면세가 조세형평의 원리에 어긋나고 소득분배 정책적인 견지에서도 불합리한 것이면서도 지금까지 존속 되어온 것은 물론. 전적으로 저축증대라는 절박한 정책목표 때문이었으며 이 두 가지 정책목표는 항상 양립할 수 없는 선택적인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고금리와 함께 저축증대에 크게 기여해 온 예금 이자면세는 그러나 생산적인 근로 소득자보다 비생산적인 금리 생활자를 더 보호해준 결과 외에도 우선적인 이윤에 집착해야 할 기업으로 하여금 세법상의 모순을 악용, 이른바 양건예금을 통한 부당이득을 얻게 함으로써 자원의 합리적 배분을 저해하고 금융 질서마저 교란하는 결과를 낳았다.
정부가 이번 세제개혁에서 추진하고 있는 예금이자세 신설은 약간의 실을 각오하고 더 높은 차원의 정책목표를 실현하겠다는 하나의 시도로 보아 일단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사실 세제당국의 속셈은 조세형평이나 정책체계의 합리화라는 추상적인 목적보다는 세수증대라는 실재에 더 관심을 두고 있는 듯하다.
정부 구상으로는 우선 거액의 기업예금 이자에 과세함으로써 부당이득의 소지를 없애고 금융정상화에 기여하며 세수증대도 기해보자는 다목적 한 의도를 함축하고 있다. 3차5개년 계획달성을 위한 내자동원이라는 큰 숙제를 안고 있는 정부로서는 그러나 저축증대의 측면을 전혀 무시할 수 없으며 이는 기술적인 면에서 충분히 검토되어야 하고 있을 수 있는 충격은 최소한으로 줄여야 된다.
정부는 예금이자 과세로 인한 저축유인의 감소를 막기 위해 저축에 대한 세액 공제제도를 채택하고 영세 가계저축은 과세에서 제외하는 등 몇 가지 방안을 검토 중이다. 그리고 예금이자세율도 되도록 낮게 책정하여 부작용을 줄일 것이라 한다.
일부 비과세논의 주장대로 예금 이자세가 실현되면 거액의 기업예금이 은행창구를 빠져나가거나 대출과 상계될 것이지만 후자의 경우 불 건실한 예금이 경리되어 대출가수요를 줄이는 것은 오히려 소망스러우며 전자의 경우 일부 기업유휴자금은 빠져나가지만 대부분은 종전의 저축성 예금에서 당좌예금으로 이체, 그대로 은행에 남을 것으로 보아 틀림없을 것이다.
또한 기업 경영면에서도 거액의 정기예금을 갖고 있다면 이는 유능한 경영 기법에 어긋나는 짓이다. 문제는 일부 유출된 기업 유휴자금을 어떻게 다른 생산적인 목적에 사용되도록 유도하는가에 있는데 이는 전적으로 정책 당국의 소임이며 예금 이자과세 조치와 함께 기술적인 보완책이 필요하다.
2월10일 현재 6천8백9억원(금전신탁포함)의 금융기관 저축성예금 중 한은의 추산으로는 약 30%인 2천억 원이 기업예금인 것으로 보고 있는데 한은이 조사한 바로는 우리 나라 저축성 예금의 이자 탄력성은 0.1218(정기예금) 밖에 안 되는데 비해 대출 탄력성이 0.6767로 가장 높게 나타나 있어 예금이자과세로 인한 저축둔화는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한편 기술적인 면에서 기업예금과 가계예금의 구별이 곤란할 것이라는 일부 주장이 있으나 이는 세무당국의 기업체의 대차 대조표 조사에 의해 용이하게 판별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예금이자과세가 단순히 세수증대를 위한 쉬운 방편의 하나로서가 아니라 소득분배정책의 일환이라는 보다 높은 차원의 견지에서 다루어져야 하며 가능한 한 부작용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한 세심한 정책적 배려가 필요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김영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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